▲ 26일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마필관리사 산재문제 및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토론회. 정기훈 기자

마필관리사들이 겪고 있는 빈번한 산업재해와 고용불안 문제가 한국마사회의 '변종 간접고용'의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마 시행인력을 외주화하면서 산재예방과 같은 사용자 의무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26일 오후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마필관리사 산재문제 및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경마 시행주체인 마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마사회가 사용자의 여러 권한(자격관리·고용승인·인사이동·해고 및 징계·임금지급·시설장비 공급 등)을 행사하고 있으면서도, 형식적으로 마필관리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공공연맹이 주관하고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위원장 윤창수)가 주최했다. 마필관리사노조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산업노동정책연구소에 각각 의뢰한 '산업재해·고용구조 문제 및 개선안에 대한 연구용역' 중간결과 발표를 듣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회는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가 맡았다.

공공부문에서도 변칙적 간접고용 확산

산업노동정책연구소가 지난달 12일부터 23일까지 서울경마공원과 부산·경남경마공원, 제주경마공원에서 일하는 마필관리사 4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6%가 노동조건이 열악한 이유를 '조교사 개별고용 제도'에서 찾았다. "마필관리사의 고용승인권이 마사회에 있으므로 관리·감독 책임은 마사회에 있다"고 답한 마필관리사들도 88.1%나 됐다.

마필관리사 고용실태를 조사한 박재범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연구원은 "마필관리사의 법적 지위가 특이한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에 따르면 93년 단일마주제에서 개인마주제로 변경되면서 마필관리사는 형식적으로는 조교사나 조교사협회에 고용돼 있다. 하지만 최종 고용승인권은 마사회가 행사한다. 사실상 마사회가 사용자로서 근로계약 체결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필관리사의 인사상 변동사항도 마사회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마필관리사에 대한 해고 및 징계, 제재 권한도 가진다. 심지어 마필관리사들의 임금결정권까지 마사회가 쥐고 있다. 겉으로 보면 마필관리사들은 조교사로부터 임금을 받는다.

이에 대해 박 연구원은 "마필관리사의 임금재원은 마사회가 책정하는 상금과 위탁관리비, 마사회가 조교사협회에 지급하는 경주협력금으로 구성돼 있다"며 "사실상 마사회가 마필관리사 임금지급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준시장형 공기업인 마사회가 마필관리사에 대해 고용승인권·교육과 제재권한·임금결정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변종 간접고용'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간접고용의 본질은 사용과 고용의 분리, 권한과 책임의 분리"라며 "마필관리사 문제의 핵심은 개인 마주제 도입 이후 고용형태가 중층화했음에도 마사회가 직접적인 근로계약 당사자로 나서지 않고 다양한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공공부문에서 변칙적인 간접고용이 확산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마사회는 자신의 권한 행사에 걸맞은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마필관리사에 대한 직접고용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토론회에 참석한 마필관리사들이 내외빈의 축사를 듣고 박수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후진적 산업재해 해마다 증가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들의 산재사고 예방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마필관리사 재해 현황을 조사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재해를 분석한 결과 모두 후진적 재해이고, 오랜 기간 산재율이 높은데도 예방이 전혀 안 되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임 소장이 98년부터 2008년까지 산재로 처리된 1천83건의 재해를 분석했더니 마필관리사들의 연간 재해율은 15~16%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평균 재해율(0.7%)의 무려 20배를 웃돈다. 게다가 2000년 이후부터는 매년 100명 이상의 산재노동자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재해 형태별로 보면 추락사고가 40%로 가장 많았고, 말의 발길질에 부딪치거나 말굽에 밟히는 사고(37%), 고삐끈에 감김(9%), 근골격계질환(8%), 전도사고(4%)가 뒤를 이었다.

부지기수로 다치고 있지만 요양기간은 짧았다. 지난해 건강 문제로 결근한 마필관리사가 32.7%인 반면 몸이 아파도 출근한 경우는 51.5%로 절반을 넘겼다. 마필관리사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마필관리사 산재 발생 원인으로는 △시설 노후화 △인원 부족 △미순치 국산말 증가 △미순치·악벽마 기승 강요 △누적된 피로 △개인 부주의 △협회의 안전대책 부족이 지적됐다.

마필관리사들은 이에 따라 산재를 줄이는 방안으로 △관리인원 확충 △1인 2두제 관리 △별도 시간에 신마훈련 △마사별 안전관리자 확충 △산재에 따른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 소장은 "다수의 사고는 충분히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다"며 "마필관리사의 재해를 관리·감독하는 책임주체가 불명확한 것은 문제"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조교사협회나 관리·감독의 책임을 가진 마사회가 마필관리사 재해 감소를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 국장은 "우리나라 평균 재해율의 20배가 넘는 산업재해가 경마장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사회와 노동부가 방치하고 있다"며 "산재발생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마련하고, 마사회장에게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국장은 "마사회 홈페이지에 갔더니 윤리경영을 하겠다고 하는데, 자기식구도 챙기지 않으면서 윤리경영을 운운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마필관리 노동자들의 죽음과 건강을 담보로 돈을 벌고 있는 마사회의 부도덕함을 사회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하청과 산재는 긴밀한 연관이 있다"며 "근본적으로 위험한 작업이나 상시적 작업은 하청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공공부문에서는 법 개정 이전이라도 모범적인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 "노동자는 죽으라는 말이냐"

한편 이날 토론회에 앞서 축사를 한 김병진 서울경마공원본부장이 마사회의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 본부장은 "경마산업이 정부 규제와 경쟁산업 번창으로 크게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며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마사회에) 돈이 없으니까 인심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돈이 없어 마필관리사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자 은수미 의원은 "헌법과 노동권을 앞에 두고 어떻게 돈이 없으면 인심이 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느냐"며 "기업이 망하면 노동자는 죽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조기홍 국장은 "기업이 어려우면 노동자는 죽어도 된다는 천박한 인식"이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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