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간 국민의 발 노릇을 했던 공공철도가 위험하다.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철도 민영화 논란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경쟁을 통한 효율성 강화와 재무건전성 제고를 명목으로 수서발 KTX 법인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상 철도 분할 민영화다.

철도 민영화 추진의 역사는 길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철도 민영화가 추진됐다. 철도노동자들의 투쟁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주춤하다가도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발톱을 드러낸다.

한국철도가 새로운 100년을 내다봐야 하는 지금, <매일노동뉴스>가 사회적 대화를 통한 발전방안을 기대하며 철도 민영화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논란을 3회에 걸쳐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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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① 돌고 돌아 다시 철도 민영화

② KTX 분할의 허구, 그리고 후폭풍

③ 바람직한 철도산업 구조개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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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 기자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발전방안의 골자는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두고, 각 분야별 6개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철도 민영화 논쟁의 핵심인 수서발 KTX 운영회사 지분의 30%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갖고, 나머지 70%는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보유하도록 했다. 신규 신설노선과 적자노선에는 민간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표 참조>
 

국토교통부


경쟁체제로 적자 해소한다고?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방안에 대해 "공공부문에서 서비스 경쟁을 강화하는 것일 뿐 민영화는 아니다"고 강변한다. 정부가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근거는 막대한 철도 적자다. 국토부가 발표한 '2011년 코레일 경영성적 보고서'에 따르면 코레일의 부채는 10조8천억원이다. 코레일이 출범한 2005년(5조8천억원)과 비교해 5조원이 늘어났다. 철도시설공단의 부채는 출범 당시인 2004년 5조6천억원에서 14조원으로 급증했다.

국토부는 지금의 독점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철도 누적부채가 2011년 24조8천억원(코레일 10조8천억원, 철도시설공단 14조원)에서 2020년 50조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경쟁만이 철도 적자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한국철도가 만성적자와 부채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주장대로 독점구조에 따른 비효율 때문일까. 철도노조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노조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다. 우선 코레일이 철도시설공단에 지급하는 선로사용료가 지나치게 비싸다. 코레일은 선로를 비롯한 철도시설 사용 대가로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 돈이 매년 5천억~6천억원에 달한다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공익서비스비용(PSO) 중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받지 못한 금액만 5천798억원이나 된다. PSO는 코레일이 벽지노선 열차운영을 비롯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로부터 받는 보상비용이다.

낮은 철도 운임비도 문제다. 철도 운임은 화물수송과 여객수송에 소요되는 비용 대비 60% 수준에서 결정된다. 노조는 "원가 대비 운임을 100% 이상으로 규제를 풀면 PSO 보상 없이도 흑자 달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4조5천억원의 고속철도 건설부채와 2009년 떠안다시피 했던 인천공항철도 매입비용 1조2천억원도 코레일이 적자에 허덕이게 만든 주범으로 꼽힌다.

노조는 비싼 선로사용료와 정부의 PSO 책임 방기, 낮은 운임비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경쟁체제만 도입한다고 해서 철도 적자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정부는 수서발 KTX 노선 경쟁을 명분으로 민영화의 길을 닦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신광호 국토부 철도운영과장은 "철도산업 발전방안 어디에도 민간자본 참여가 없는데 왜 민영화라고 하느냐"며 "민간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은 딱 하나인데, 그것은 코레일이 노선운영을 포기할 때"라고 주장했다. 신 과장은 "2005년 코레일 출범 당시 5조8천억원, 부채비율 70%였는데 올해 6월 현재 435%로 뛰었다"며 "이 부채를 어떻게 해결할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노조는 정부가 부채를 떠안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야 고생 안 하고 좋다"며 "많은 나라들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철로를 없애고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데 한국도 그렇게 가길 원하는 건지 (노조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철도 민영화의 흑역사

사실 경쟁체제를 바탕에 깐 철도 민영화 추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철도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된 건 외환위기에 직면한 김대중 정부 때였다. 김대중 정부는 '국가부채 축소'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행각서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포항제철(현 포스코)·한국통신(현 KT)·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인삼공사) 등 대형 공기업들과 함께 철도를 민영화 대상 리스트에 올렸다.

애초 김대중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철도 민영화가 아닌 공사화를 택했다. 그러다 99년 3월 민영화로 돌아섰다. 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은 "당시 철도 민영화 정책은 건설교통부나 철도청이 아닌 기획예산처가 주도했다"며 "건교부나 철도청이 속도 조절을 얘기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김대중 정부의 방침은 △철도시설 건설·유지·보수기능은 철도건설공단으로 일원화 △화물수송·여객운송·차량정비 등 운영업무는 2001년까지 단계적 민영화 △민영화 및 공단이관에 대비해 내부조직을 기업형 조직인 사업본부제로 전환 △민간위탁을 통한 인력감축 등이었다.

그런 가운데 노동계는 2002년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발전·가스노조 공동파업을 추진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철도 민영화 추진은 중단됐다. 뒤이은 노무현 정부는 "기존의 민영화 방침을 철회한다"고 밝히면서도 철도청을 시설(철도시설공단)과 운영(코레일)으로 분리했다. 이른바 상하분리인데, 민영화 전 단계로 받아들여졌다. 정부가 겉으로는 '민영화' 표현을 자제하면서, 실제로는 '사실상 민영화'로 우회하는 전술을 택한 셈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철도 민영화가 다시 고개를 든 건 이명박 정부 때였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10월 '3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통해 '철도 조건부 민영화'를 내걸었다. 2009년 말부터 물밑으로 수서발 KTX 민영화를 추진했고, 2011년 1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식화했다. 수서발 KTX의 운영을 민간자본에 맡기는 식의 그림을 그린 국토부는 이때도 타깃을 '코레일의 방만경영'에 맞췄다. 코레일이 열차운영을 독점하면서 방만경영을 하고 과도한 적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불친절한 서비스와 안전사고까지 여론몰이에 동원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주장은 '임기 말 마지막 먹튀', '대기업 특혜' 논란에 휩싸이면서 힘을 잃었다.

박근혜 정부, 철도 분할 민영화로 회귀?

박근혜 정부의 철도 민영화는 이전 정권과 비교해 은밀하고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김재길 노조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의 철도 민영화가 불도저식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좀 더 세련되게 철도를 분할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놓고 민영화를 강행하다 국민적 반감을 산 반면 박근혜 정부는 철저히 경쟁체제를 내세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국민적 합의와 동의 없는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약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제2 철도공사' 설립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논란이 일자 다시 우회로를 택했다. 국토부는 6월 코레일과 연기금 등이 참여하는 출자회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 운영을 맡기는 것을 뼈대로 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재무적 투자자들의 재산권 처분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민영화의 물꼬를 튼 것인데도, 국토부는 여전히 "민영화가 아니다"고 말한다.

KTX민영화저지 및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국토부는 코레일 참여를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코레일의 참여 범위를 최소한으로 제한해 놓고 있다"며 "언제든 수서발 KTX 운영회사를 민간이 주도하는 지배구조로 변경해 민영화하는 길을 터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영훈 지도위원은 "철도산업 발전방안에는 김대중 정부 시절 입안됐던 노선별 민간위탁을 통한 분할 민영화 정책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철도 정책이 돌고 돌아 민영화로 회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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