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4일 오전 과천 경마공원을 찾아 마필관리사들의 근무현장을 살피고 있다.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열아홉 살에 들어와 25년을 일했는데 지금까지 받은 장애진단만 4개입니다. 제 나이 이제 마흔다섯인데 앞으로 이 몸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참 서럽고 답답합니다." (박경현씨·조교승인)

화려한 경마산업 뒤편에 열악한 노동조건과 빈번한 산재사고로 골병드는 노동자들이 있다. 경주마들을 관리하고 길들이는 마필관리사들이다. 최근 5년간 마필관리사 직종의 산재율은 13.89%로 전국 평균(0.52%)을 20배나 웃돈다.

4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위원장 우원식)가 13번째로 찾은 현장은 이 같은 산재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마필관리사들이 근무하는 과천 서울경마공원이다. 이날 새벽부터 진행된 현장방문에는 우원식·김기식·김기준·유은혜·윤후덕·이상직·이학영·은수미·전순옥·진선미·한정애 의원이 함께했다. 이들은 경마공원 내 두 곳의 마사지역 중 삼포마사를 둘러보면서 마필관리사들의 노동실태를 살폈다.

◇산재사고에 골병드는 마필관리사들=동도 트지 않은 새벽 5시30분. 서울경마공원 경주로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경주마들이 새벽운동을 하러 나오는 시간이다. 마필관리사에게 고삐를 맡긴 경주마들은 제법 얌전하게 경주로로 들어섰다. 하지만 예민한 말 한두 마리는 고삐를 잡힌 채 날뛰었다.

"저렇게 말들이 날뛸 때 어깨를 많이 다칩니다."

윤창수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조 위원장에 따르면 마필관리사들은 낙마사고와 말에 차이는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경력 20년 이상인 베테랑 마필관리사라도 사고를 피할 순 없다. 훈련이 덜 돼 길들여지지 않은 '미순치 국산마'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29년째 경주마를 돌보고 있는 송봉조(57)씨도 그동안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다. 한 번은 낙마사고로 전신마비가 돼 6개월간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 흥분한 신마의 뒷굽에 옆구리를 맞아 비장이 파열되고, 갈비뼈가 2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적도 있다. 송씨는 "목뼈에 핀을 14개나 박았다"며 "명색이 조교보인데 말은 못타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마선진국들은 18개월령부터 6개월 이상 목장에서 순치된 말을 들여와 경주마로 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순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신마들을 경마장에 들인다. '빨리 빨리'를 요구하는 마주들의 요구 때문이다. 윤창수 위원장은 "되도록 빨리 경주에 나가 상금을 타야 본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길들여지지 않은 생망아지를 일단 마방에 들이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런 미순치마를 길들이다 다치는 것은 온전히 마필관리사들의 몫이다. 마필관리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마방시설도 상태가 심각하다. 임경빈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삼포마사는 워낙 날림으로 지어서 시설이 열악하다"며 "샤워실이 적어 말을 씻기는 곳에서 샤워를 하고 퇴근을 한다"고 말했다.

◇"국감서 산재·고용형태 지적"=불합리한 마필관리사 고용형태도 문제다. 마필관리사는 애초 한국마사회 기능직 직원으로 채용됐지만, 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하면서 조교사·기수·마필관리사가 모두 외주화됐다. 이에 따라 마필관리사들은 조교사 또는 조교사협회와 고용관계를 맺고 있다. 서울경마공원은 조교사협회와 마필관리사노조가 고용계약을 맺고 있다. 마주가 조교사와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조교사협회 차원에서 마필관리사들의 조별 이동을 조정할 수 있다.

반면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조교사와 마필관리사가 개별적으로 고용계약을 체결한다. 마주가 조교사와 계약을 해지하는 순간 그 밑에 속한 마필관리사들은 자동으로 해고된다. 제주경마공원은 조교사 개별고용 형태는 같지만 조교사 대표와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 부산경남경마공원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윤 위원장은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노사정 합의체를 만들듯이, 마사회·마주·조교사·마필관리사 등 경마주체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모든 사안을 논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원식 위원장은 "산재율이 이렇게까지 높은 줄 몰랐다"며 "국감에서 산재 문제와 왜곡된 고용형태에 대해 지적하겠다"고 말했다. 은수미 의원은 "마사회가 산재보상기금을 만들거나 시설을 확충한다면 최소한 산재는 예방하고 보상할 수 있다"며 "이 부분을 국감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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