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자 파견업을 허가받은 합법 파견업체는 지난해 말 기준 2천87곳, 파견노동자수는 총 12만347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업체의 10곳 중 1곳(10%), 파견노동자 10명 중 2명(16.6%)은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서 밀집해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산업단지 가운데 취업자수가 ‘국내 최대’라는 반월공단의 실상은 6개월짜리 단기 파견노동을 쓰고 1~2주의 간격을 둔 후 다시 쓰는 방식으로 반복고용하면서 이뤄졌다는 실태보고서가 나왔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공동으로 연구해 작성한 ‘안산·시흥 파견노동 실태보고서’를 <매일노동뉴스>가 3일 입수했다.

일시·간헐적 파견노동자 66.8% 안산 집중

안산지역에는 파견노동자가 몰려 있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파견기간이 짧은 단기 파견노동자들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연구팀이 노동부의 지난해 상반기 ‘근로자파견사업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안산지역 파견노동자 2만2천910명 가운데 95.7%는 6개월 미만 단기 파견노동자로 나타났다. 파견기간이 3개월을 넘지 않는 초단기 파견노동자도 1만8천명으로 80% 수준에 육박한다. 다시 말해 안산에는 주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일시·간헐적 사유로 파견이 허용된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는 이야기와도 일치한다. 실제로 노동부의 지난해 상반기 ‘근로자파견사업 현황’에 따르면 전국 일시·간헐적 사유로 인한 파견노동자 10명 중 7명(66.8%)은 안산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구팀은 “실제로 실태조사 결과 안산의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 대부분은 6개월의 계약기간을 두고 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단기 파견노동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은 원청사용자가 파견법의 맹점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파견법 제5조는 예외적으로 일시적·간헐적 사유로 인한 파견노동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를 편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산비정규센터는 올해 5~6월 두 달간 623명을 대상으로 안산과 시흥지역의 파견노동 실태조사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파견법은 일시·간헐적 사유가 있더라도 6개월(원칙적으로 3개월·1회 연장 가능) 이상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안산 반월공단의 제조업체들은 파견노동자를 6개월간 쓰고 1~2주 정도 공백기간을 둔 후 다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산·시흥지역 파견노동자의 노동조건도 매우 형편없었다. 안산비정규직센터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파견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178만9천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지난 3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상 파견노동자 월 평균임금 219만5천원의 81.5%에 불과하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61.4%에 머물렀다.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해 보니 ‘회사가 가입해 주지 않아서(21.7%)’보다 ‘단기고용이라서 불필요하다(38.3%)’는 응답이 더 많았다. 또 제조업 노동자의 17.2%가 산업재해를 겪었다고 응답했으나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은 경우는 30.2%에 그쳤다.

이주노동자 파견·이중 간접고용 횡행

뿐만 아니다. 파견업체(1차 파견사업주)로부터 노동자를 파견받은 업체(2차 파견사업주)가 다시 제3자에게 노동자를 파견하는 이중파견도 문제가 되고 있다. 연구팀은 “반월·시화지역에서 이중파견과 유사하게 파견사업주가 사내하청업체에 노동자를 파견하고, 사내하청업체는 다시 해당 노동자를 원청사업장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간접고용 형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누가 진짜 사용자인지 고용관계의 책임소재는 더욱 불명확해진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원청업체에서 일할 뿐인데 사용사업주의 책임은 1차적으로 사내하청업체가 지고, 임금은 파견사업주가 주는 기형적인 형태가 된다. 원청업체 입장에서는 위장도급이 문제가 되더라도 사용사업주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김으로써 노동관계법상 책임을 이중으로 회피하게 된다.

연구팀은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장기근속을 하면 정규직, 그렇지 못하면 비정규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라며 “그만큼 직접생산공정에 단기파견으로 일하는 고용형태가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법파견의 징후는 뚜렷했다. 조사결과에 다르면 채용심사를 주관하는 회사가 사용업체라고 응답한 비율은 36.8%로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사용업체가 작업지시나 인사결정을 한다는 응답은 각각 64.4%, 51.2%로 높았다.

최근에 대두되는 문제는 특히 열악한 저임금 단기파견 일자리가 이주노동자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노동자 파견은 어떤 경우든 불법에 해당한다. 하지만 안산·시흥지역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으면 취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파견 근절, 원청책임 강화로부터

연구팀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파견과 도급의 구분기준을 엄격하게 하되, 법적 판단에 있어서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원청사업장에서 노무제공이 이뤄지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원청사용자의 포괄적 책임을 묻는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사회적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함께 공공의 직업소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안산·시흥지역의 경우 파견노동을 사용하는 기업의 상당수가 50인 미만 영세사업체다. 노동자 역시 파견업체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로 파견이나 용역 아니면 일자리가 없다(46.0%)에 이어 쉬운 구직과 이직(34.7%)을 꼽았다.

박재철 안산비정규직센터 소장은 “취업경로를 보면 파견업체 아니면 아는 사람 소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공공적 영역에서 일자리 알선 기능을 강화하면 수수료라는 중간착취 문제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안산비정규직센터는 4일 오후 안산시의회에서 안산·시흥 파견노동 실태보고 결과 보고 및 토론회를 연다. 11월에는 파견노동자의 삶과 애환을 담은 연극 공연도 예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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