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대내 리스크를 언급했다. 지난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박 대통령은 이날 “노사관계 역시 비정상적인 관행의 정상화 차원에서 사전에 문제점을 점검한다”며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일도 매우 중요한 위기관리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철탑농성을 벌였던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정부 출범 후 박 대통령은 고용률 70%를 위해 노사 협조와 대타협만 역설했다. 노사관계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대내 리스크라고 했지만 그래도 노사관계를 거론해 줘서 고마웠다. 박 대통령에게 노동은 안중에도 없는 줄 알았건만 리스크 요인으로나마 노사관계를 생각해 줬으니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그렇다고 노사관계를 단순히 위기요인으로 치부하고, 갈등관리만 정부 역할로 여기는 박 대통령의 판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갈등관리라도 잘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쟁의행위를 진행하고 있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를 겨냥한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명박 대통령의 비즈니스프렌들리와 다를 게 없다. 물론 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외환위기에 처함에 따라 우리나라에 그 불똥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은 노사갈등에서 공정한 중재자라는 정부의 역할을 넘어선다. 박 대통령은 28일 10대 그룹 총수와 만난 자리에서 경제민주화 관련입법과 관련해 신중한 검토를 약속했다.

25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정부의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다중대표소송제 도입·기업 감사위원회 독립성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법안을 다시 개정하겠다고 언급한 셈이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민주화 공약의 명백한 후퇴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우리 경제의 근본체질을 강화하고, 위기요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함에도 박 대통령은 이를 애써 외면했다. 박 대통령 스스로 위기요인을 키우는 꼴 아닌가.

이것만이 아니다. 정부는 낙하산 인사를 통해 위기요인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낙하산 인사는 해당 공공기관의 노사갈등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리스크 요인이다. 최근 감사원과 코레일의 사례는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외압의 실태를 보여 준다.

양건 전 감사원장은 26일 이임사에서 “감사업무의 최상위 가치는 뭐니 뭐니 해도 직무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라며 “재임 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토로했다.

감사원 관계자에 따르면 양 전 원장은 인사문제와 관련해 외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장훈 중앙대 교수가 최근 감사위원으로 추천된 것과 관련이 있다. 양 전 원장은 장훈 교수의 임명 제청에 반대해 갈등을 빚었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표방하는 감사원의 위상을 고려할 때 장 교수는 적합하지 않다는 게 양 전 원장의 의견이었다. 감사원은 헌법상 독립기관이지만 대통령 직속 소속기관이다. 임명 제청 요구에 무작정 반대할 수만은 없었던 양 전 원장은 결국 사퇴를 택했다.

코레일의 사례는 너무나 천박하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코레일 사장 선임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하기로 결정했다. 국토교통부 고위관계자가 임원추천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특정후보를 밀어 달라”고 한 것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수서발 KTX 개통을 앞두고 코레일을 지주회사로 변경하되 수서발 KTX와 일반여객·화물·부대사업을 자회사로 분리하는 경쟁체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코레일을 지주회사와 자회사로 쪼개는 방식은 경쟁체제라는 말로 포장했을 뿐 사실상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토부가 이를 밀어붙이고자 입맛에 맞는 인사를 추천하려다 덜미가 잡힌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은 공공기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영화된 공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석채 KT 회장에게 사퇴를 압박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했지만 소문은 꼬리를 물고 확산되고 있다. 낙하산 인사에 반대해 온 민주당은 “이석채 회장의 전횡을 고려할 때 사퇴하는 게 옳다”며 이례적으로 청와대 외압에 찬성하는 성명까지 냈다. 이석채 회장은 성토받아 마땅하지만 외압은 외압이다.

이런 사례는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 내는 위기요인이다.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낙하산 인사와 외압이라는 역대정권의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노사관계에만 리스크가 있는 양 떠넘기고 있다. 낙하산 인사와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가 리스크 관리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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