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를 구속시킨다고, 조합원을 탄압한다고 끝날 싸움이었다면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은 10년간 지속될 수 없었다. … 10년을 싸워 온 것처럼 또 한 번 어려움이 찾아왔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과거처럼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는 지난 5일 <매일노동뉴스>에 보낸 편지 '지옥 같은 여름을 마치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3일이 지났다. 8일 지독한 겨울바람과 불볕더위를 견디다 296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온 최병승·천의봉씨는 "부조리한 땅 위에서 다시 싸우기 위해 철탑에서 내려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300일에 가까운 이들의 철탑농성은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의 횡포에 맞서 '불법파견'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건강악화 때문에 철탑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두 발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허리디스크가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였다.

여기에 지회 지도부가 잇단 구속과 수배로 공백상태가 되고, 현장조직력도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비정규직지회는 일단 조직을 추스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록 지회 정책부장은 "정규직지부가 8말9초에 임단협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어서 비정규직지회도 회사측과 협상국면을 여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며 "수배 중인 박현제 지회장이 교섭에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6월13일을 끝으로 중단된 불법파견 교섭이 재개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는 3천500명 신규채용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회사가 던진 안에 노조가 답을 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라는 노조측의 입장에 변화가 없으면 교섭 재개가 무의미하다는 설명이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만큼 현대차 불법파견 교섭은 당분간 공전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직지회 모두 임원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번 달이 지나면 교섭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조건이다.

다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다음달 정기국회에서 현대차와 삼성전자서비스 문제 등에 대한 간접고용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고 있어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296일, 울산 철탑농성 시작부터 해제까지

최병승·천의봉씨가 철탑에 오른 것은 지난해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있던 10월17일. 같은해 2월 대법원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지만 회사가 8개월 가까이 '사내하청 정규직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내린 결단이었다. 두 사람이 철탑에 오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현대차가 사내하청 정규직화 대신 3천500명 신규채용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회사는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기대를 품고 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신규채용'이라는 카드를 내밀어 이들을 철탑 위로 내몰았다. 이후 296일이 흘렀지만 노사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대차는 지금도 10년 넘게 지속한 불법파견에 대한 반성이나 잘못된 고용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개선의지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어 올해 3월19일에는 중앙노동위원회가 현대차 51개 사내하청 노동자 447명이 제기한 부당 징계·해고 구제신청에서 "32개 업체가 불법파견"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지만 현대차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대신 그 사이 3명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이 자살했다.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회사측이 이들과 비정규직지회를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만 14건, 손해배상 청구액이 183억원이다. 그리고 희망버스가 달려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언론과 정부는 ‘폭력버스’라는 용어를 써가며 물타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철탑 아래에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철탑 농성 해제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희망버스기획단은 이달 말 예정된 ‘제2차 희망버스’를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이창근 희망버스기획단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중단 없이 계속 간다는 것이 희망버스 쪽의 의지”라고 말했다.


철탑농성 일지

2012년 10월17일 최병승·천의봉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주차장 송전철탑에서 농성 돌입

2012년 10월25일 대선캠프에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설문 전달. 무소속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와 진보정의당 심상정 당시 대선후보 철탑 농성장 방문

2012년 12월13일 현대차가 2016년 상반기까지 3천5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신규채용 제안. 비정규직지회 "기존 안과 다를 바 없다"며 거부

2012년 12월14일 비정규직지회 부분파업 과정에서 사측 관리자와 몸싸움 발생. 현대차가 사내하청 등을 대상으로 정규직 신규채용 공고

2012년 12월27일 울산지법 철탑 퇴거단행 및 업무방해 가처분 수용

2013년 1월7일 현대차 최병승씨에 대해 정규직 인사발령

2013년 1월8일 울산지법 천막농성장 강제 철거 시도

2013년 1월23일 현대차, 2차 신규채용 공고

2013년 3월19일 중앙노동위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32곳 불법파견" 판정

2013년 7월20일 '희망버스' 울산 도착, 물리적 충돌 발생

2013년 7월22일 울산지방경찰청, 합동수사본부 꾸려 희망버스 수사

2013년 8월1일 울산경찰, 비정규직지회 간부 구속

2013년 8월6일 희망버스 8월31일 '두 번째 희망버스' 출발 예고

2013년 8월8일 296일 만에 철탑농성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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