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보수 지식인들에게 노동운동은 언제나 비난의 대상이었다.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귀족노조라고 비난했고, 비정규직노조가 투쟁을 하면 폭력집단이라고 비방했다. 노조가 제 잇속만 차린다고 손가락질하다가도, 민주노총이 노동자 전체를 위한 제도개선 투쟁을 하면 정치투쟁을 한다고 또 삿대질을 해 댔다. 한마디로 그냥 싫은 것이고,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 지식인들에게는 노동운동이 소중한 무엇일까.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이 시대 노동운동에게 보수의 비난보다도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왜곡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보수의 노동운동에 대한 태도야 원체 의도 자체가 명확하니 비판의 논리보다도 이념의 선택 문제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진보로 인정되는 지식인들의 노동운동 왜곡은 내용의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운동에 대한 ‘이성적’ 낙인으로 작동한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재벌개혁과 관련해서 많은 글을 쓴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는 지난 토요일에 현대차가 노사상생을 하지 않으면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현대차 사측에게 노조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주문하기도 했지만, 기사 대부분은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하고 임금에 비해 생산성은 낮게 유지하는 노조가 문제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주장의 핵심적 근거는 현대차가 언론에 뿌린 HPV(Hours Per Vehicle, 공장 안 모든 노동자들의 수에 노동시간을 곱한 다음 생산한 차량대수로 나눈 수치. 즉 차 한 대당 들어가는 총 노동시간) 비교자료다. 현대차가 다른 경쟁사보다 HPV 수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매년 노조를 비판할 때마다 해당 자료를 사용했다. 곽 기자는 재벌 대기업 문제를 오랫동안 분석해 오면서도, 정작 노조 비판에는 현대차가 제공한 자료를 아무 의심도 없이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만약 기자가 노조의 주장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현대차가 인용하는 HPV가 얼마나 못 믿을 수치인지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컨설팅업체인 하버가 만들어 내는 HPV 지표는 같은 급의 차에 대해 같은 공정을 비교하는 데만 적합하기 때문이다. 곽 기자는 기사에서 현대차 국내 공장 HPV 수치가 앨라배마 공장 수치보다 매우 커서 국내 공장 생산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형 승용차부터 고급 승용차, 그리고 트럭까지 만드는 국내 공장이 중·소형차만 생산하는 앨라배마 공장과 대당 들어가는 노동시간이 같다면 그게 오히려 기적인 것이다. 당연히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는 국내 공장의 평균 HPV가 훨씬 높아야 한다. 노조 때문이 아니다. 이건 자동차산업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곽 기자가 현대차의 협력업체 상생 관련 홍보자료를 가지고 현대차가 원·하청 불공정거래를 일소했다고 주장하지 않듯이, 노조를 비판하는 회사자료를 가지고 그대로 노조를 비난할 일은 아닌 것이다.

진보 타이틀을 내걸고 아예 노조 비판의 전면에 나선 지식인들도 있다. 희망버스를 진보의 재앙이라고 비판했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대표적이다. 노조가 만드는 고용경직성 때문에 국내에 좋은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재벌개혁을 주장해 온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한다. 김 교수는 쌍용차 사태가 정리해고를 학습하지 못한 노조 탓이라고 일축했다.

전경련이나 경총에서 하는 주장과 차이가 없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 별다른 근거가 없다. 만약 고용을 가로막는 것이 강성노조라면, 무노조 삼성전자는 매출 증가에 따라 고용이 몇 배는 늘어야 했다. 그리고 노조 때문에 해외로 공장이 나간다면, 삼성전자보다 현대차의 해외비중이 몇 배는 높아야 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고용경직성 요인이 거의 없는 삼성전자는 지난 2년 동안 매출이 두 배 늘어나는 동안 고용인원이 5% 감소했다. 반면 한국의 대표 강성노조가 있는 현대차는 같은 기간 매출이 38% 증가할 때 고용이 7% 증가했다. 현대차가 해외 생산 비중이 높아졌어도 여전히 절반 가까이 국내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휴대폰의 80% 이상, TV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들의 신념에 찬 주장, 노조로 인해 질 좋은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거나 해외로 나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믿을 만한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노동운동에 대한 비난이 진보의 새로움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노동운동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대안제시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의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에 대한 과학적 분석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은 한국의 노동자 상태와 노동운동의 정당성을 보다 과학적이고 공격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노동운동에 대한 억지 비판이 횡행하는 것은 노동운동 스스로가 자체 역량 없이 외부 지식인들에게 정책을 아웃소싱한 결과이기도 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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