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는 단 한 개의 노총만 존재한다. 베트남노동총연맹(VGCL·베트남노총)이 그것이다. 공산당이 독점하는 정치체제를 반영한 것으로 베트남노총은 인민전선체인 베트남조국전선을 구성하는 주요 대중조직으로 공산당 및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베트남노총 위원장은 공산당 중앙위원이며, 많은 간부들이 공산당원이다. 베트남노총은 지난해 6월 현재 11만3천402개 사업장에서 일하는 조합원 727만명을 조직하고 있으며, 산하에 63개 도연맹과 20개 산별노조를 두고 있다. 참고로 베트남의 임금생활자 규모는 1천500만명이다.

베트남노총 산하 63개 도연맹이 기업 혹은 공장 수준의 노조조직화와 단체교섭을 주도한다. 산별노조나 산별연맹이 노동운동과 노사관계를 주도하는 우리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이다.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달리면 박닌이라는 곳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종업원 2만7천명의 세계 최대 규모 전자제품공장을 세운 곳이다. 여기에 2011년 노조가 들어섰는데, 그 상급단체는 금속제조업 부문을 책임지는 산별노조가 아닌 박닌 도연맹이다. 우리로 치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노조활동·단체교섭·노사관계의 책임을 금속노조가 아닌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맡은 셈이다.

노총 지역조직이 주도적 역할

이는 노조활동과 노사관계 속성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산업적 기반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베트남노총이 역사적으로 가졌던 당 노선과 정부 정책의 ‘인전대(引傳帶·당과 대중을 연결해 주는 혁명적 대중단체)’로서의 조직 위상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0개 산별노조는 정부와 국영기업을 조직대상으로 하며, 민간기업이나 외국인투자기업은 전혀 조직하지 않고 있다. 민간사업장 조직화와 단체교섭을 노총의 지역조직이 주도하는 현행 구조와 방식은 베트남 노조운동의 중장기적인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력과 자원의 측면에서 베트남 노조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수준이다.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 체제의 유산으로 베트남 노조는 상당한 자산과 재정, 그리고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업장, 즉 현장이다. 노조는 많이 조직돼 있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익을 증진하는 노동자조직으로서의 노조활동은 활발하지 않다. 단체교섭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며, 단체협약이 없거나 있더라도 노동법을 베낀 수준이다. 더군다나 민간사업장과 외국인투자기업을 상대하는 노조 조직은 산별노조가 아니라 노총 지역조직이다 보니 조직화와 단체교섭에서 전국·산업 수준의 전망을 담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기업별 수준의 노조활동·단체교섭·노사관계가 굳어져 가고 있으며, 이런 장애들이 노조운동의 실질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장의 노동자 출신 간부가 상급단체의 지도부나 간부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상급단체 간부가 노조와 노동자를 위한 운동가가 아닌 노사 조정자로서 스스로의 역할을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급단체와 현장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공산당과 정부에 대한 베트남노총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다.

2000년에 70건에 불과했던 파업건수는 2005년 152건, 2008년 762건, 2011년 981건, 지난해 539건으로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파업의 72%인 421건이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일어났다. 대부분 한국·일본·대만기업이었다. 1천500만 임금노동자 가운데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수가 170만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파업 대부분이 외국인투자기업에서 일어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물론 베트남노총 산하 어떤 지역조직도 파업을 조직한 적은 없다. 모든 파업은 현장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파업으로 법적 절차를 밟지 않은 불법파업이다.

하지만 구속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사용자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파업 원인으로 베트남노총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사회보험금 횡령 같은 사용자의 불법행위, 단체교섭의 부재와 저질의 단체협약, 취약한 사회적 대화 구조를 꼽고 있다.

2018년까지 1천만 조합원 목표

올해 7월27일부터 30일까지 제11차 베트남노총 전국대회가 하노이에서 열렸다. 5년마다 열리는 대회는 950명의 대의원이 참가한 가운데 2008년 대회 이후 집행된 사업들을 심사하고 2018년까지 향후 5년간의 사업계획을 결의했다. 베트남노총은 새 사업계획의 핵심을 조직 확대·교육 강화·단체교섭 활성화로 잡았다. 조합원 1천만 시대를 열고, 30인 이상 사업장의 90%를 조직하며, 100%의 국영기업과 65%의 민간기업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상급단체 간부 100%와 단위노조 간부 70%를 교육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사업과 활동의 주력이 산별노조냐 노총 지역조직이냐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베트남은 86년 제6차 베트남공산당대회에서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결의한 이래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빠르게 편입됐다. 노조 역시 자신의 역할을 공산당 ‘인전대’에서 자본주의적 단체교섭과 노사관계의 한 축으로 변화시켜 왔다. 베트남의 거대한 노조조직이 진정한 노동운동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제노동운동이 관심을 가질 때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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