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요즘 들어 “통상임금이 뭐예요”라고 묻는 조합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신 “통상임금 소송 언제 하면 좋겠습니까”, “대법원 판단이 그대로 유지될 것 같습니까”,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입니까”라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수준의 질문도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중 지엠 회장에게 한 통상임금 발언 뒤 급변한 현장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대통령 의중을 제대로 알기나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다수 언론은 “수십조원에 이르는 소송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용자측의 보도를 줄기차게 실었다. 정작 핵심이 돼야 할 법률적인 판단은 생략된 채 말이다. 왜곡된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언론은 임금노동자 대다수를 통상임금 전문가로 만들었다. 아래는 전문가를 위한 사족이다.

오비이락이라고 할까. 대통령 발언 후 예정됐던 한국지엠 항소심 판결 선고가 연기됐다. 일부 하급심에서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언제쯤 대법원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최근 하급심에서 이어지고 있는 판결 경향은 알아 둘 만하다.

이른바 삼화고속 사건(인천지법 2013.5.9 선고 2012가합4912)에서는 상여금 산정기간 동안 조합원들이 정상적으로 근무했는지, 상여금 지급 월까지 근무했는지, 1년의 근속기간을 충족했는지 여부를 근무성적으로 평가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기존 금아리무진 사건에서의 대법원 입장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2013.1.22 선고 2012가합30463)은 근속연한에 따라 차등지급하거나 조합원 본인의 귀책사유로 휴직 후 복직하는 경우 복직한 날을 기준으로 일할 계산해 상여금을 지급하는 등의 예외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근로자의 근무실적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상여금을 매 근무일마다 지급되는 일급제 수당이라고 평가하고, 월 출근일수가 달라 월 합산액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두고 실제 근무실적에 따라 그 지급액이 달라진다고 볼 수도 없다고 보는 등 통상임금의 본질에 관해 명쾌한 해석을 내놓았다.

파주시설공단 사건(의정부지법 2013.4.19 선고 2012가합50704)에서도 동일한 판결이 이어졌다. 상여금이 근무기간 3개월 미만인 자에게는 일할 계산해 지급되고, 지급일 기준으로 퇴직자를 제외하고 재직자에게만 상여금이 지급됐지만 법원은 이러한 규정은 일종의 상여금 지급조건일 뿐 근무성적과는 상관없이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고정적인 임금이므로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부천 소신여객 사건(인천지법 2013.6.13 선고 2012가합2827)에서도 법원은 근로자의 근속기간에 따라 상여금 액수가 다를 뿐만 아니라 월 만근 미만 근로자에게는 상여금을 일할 지급하고 중도 퇴직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통상임금으로서의 고정성이 결여됐다는 회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에서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대법원의 추가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을 심심치 않게 제기하고 있다. 나름의 예상으로는 대법원은 아마도 하급심이기는 하나 다수의 판례를 따르지 않겠는가.

노동자들의 개별 권리보장에 적극적인 법원의 태도는 환영할 만하다. 이와는 별개로 소송을 준비하는 노조와 조합원 입장에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짧은 경험이지만 소송이 조직의 단결과 노동기본권 확대에 기여하는지는 별개인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로는 소송 진행 과정과 좋은 성과가 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는 사례도 봤다.

그렇기에 소송을 준비하는 조직에서는 최대한 조직적으로 일치된 결의를 해야 한다. 동일한 조직에서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거나 기존 조직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소송은 조합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이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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