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노동자가 주도하지 못하는 법·제도 개선은 종종 결과적으로 개악이 된다. 개선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개악으로 마무리된 제도의 대표적 예가 올해 개정 시행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다.

정부는 2008년 화물연대 파업 이후 육상 화물운송시장의 전근대적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을 약속했고, 2011년 법 개정을 통해 운송실적신고제·직접운송의무제·우수 화물정보망 인증제 등을 2013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해당 제도는 얼핏 다단계 구조를 개선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해 시행에 들어가자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단계 구조의 최대 피해자인 지입차주 화물노동자들에게 제도 변화의 피해가 전가되고 있다.

한국의 육상 화물운송시장은 그야말로 제도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할 만큼 엉망진창이다.

한국의 화물운송시장은 지입제를 골간으로 한다. 화물운송을 직접 담당하는 화물차는 화물노동자가 소유하지만 화물운송 면허는 운송업체가 소유한다. 운송업체는 면허만 가지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화물노동자로부터 면허 대여료를 받아 챙기는 구조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운송사업자로 등록한 운송업체 중 70% 가까이가 경영이나 물동량 확보를 위한 영업을 하지 않고 면허임대료(지입료)만 받아 챙기는 업체들이다.

그나마 실제 영업을 하는 30%의 운송업체들도 물동량을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통해 확보하다 보니 각종 알선료 명목으로 운송비를 중간에서 다 빼먹고 화물노동자에게 화물을 넘긴다. 지입제와 다단계 하도급이 시장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은 한국의 여러 산업에서도 화물운송시장이 유일하다. 한국 화물운송시장은 전형적으로 재주는 곰(화물노동자)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면허 소유한 운송업체)이 벌어 가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운송실적신고제·직접운송의무제·우수 화물정보망 인증제는 이런 지입제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해 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운송실적신고제는 운송업체가 자신의 운송실적을 정부에 신고하고 운송업체 평균 매출의 10% 미만인 업체를 퇴출시키는 제도다. 실제 운송을 하지 않은 채 지입료만 받는 업체들을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직접운송의무제는 운송업체가 50% 이상의 화물을 직접 운송하도록 한 것이고, 우수 화물정보망 인증제 역시 화주와 운송업체가 인터넷을 이용해 직접 화물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책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지입제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개선돼 화물노동자들의 여건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제도 변화에 따른 모든 비용이 화물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지입료만 받던 회사들이 운송실적을 올리기 위해 화물운송면허를 무기로 지입차주 운송실적을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반대로 물동량을 가지고 있는 운수업체가 화물운송면허를 넘기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대기업 운송업체들의 횡포도 극심해졌다. 대기업 운송업체들은 직접운송의무제를 핑계로 중소 운송업체의 물동량을 걷어 자신이 직접 지입차주에게 화물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기업 운송업체의 월등한 교섭력을 무기로 예전보다 운송료를 후려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단계 구조가 줄어 화물노동자들의 운송료 수입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의 중간착복이 심해진 것이다. 작은 도둑들이 사라지자 큰 도둑이 들어 더 많이 가져가는 꼴이 돼 버렸다.

정부의 지입제 다단계 하도급 개선 정책에서 볼 수 있듯이 화물운송시장에서는 앞으로 어떤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제도 변화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지입제라는 전근대적 제도가 유지되는 한 화물운송시장에서 실제 운송을 담당하는 지입차주 화물노동자들은 절대적 힘의 열위 때문에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화물운송시장에서 화물노동자들의 권한이 강해지지 않는 이상 물동량을 쥐고 있는 대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할 것이다.

정부는 제도개선의 초점을 '화물노동자들의 교섭력 강화'에 맞춰야 한다. 그래야만 지입제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화물운송면허를 운송업체가 아니라 화물차주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 제도와 법정 최저운임을 정하는 표준운임제 등이 바로 그런 제도개선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물운송시장의 최대 피해자인 화물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인 화물연대를 제도개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로 대우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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