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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부대표가 된 YH여공 신민당사 점거농성의 주인공 최순영"함께 사는 공동체, 밑으로부터 권력을 만들어야 가능"
79년 암울했던 박정희 정권 말기, 18년 장기독재를 끝내게한 계기가 됐던 'YH여공 신민당사 점거농성'을 주도했던 당시 한국노총 섬유노조 YH지부장 최순영(48세)씨. 노동운동가에서 시민운동가로, 두차례에 걸쳐 부천시의원을 지내고 지난 6월11일에 민주노동당부대표로 선출된 최씨는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민주노동당 부대표로서의 포부부터 밝혔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야기는 70년대 민주노조운동과 YH노조부터 할 수 밖에 없었다.

*노동운동이 희망일 수밖에 없는 까닭?

'YH노조'와 신민당사 점거농성을 빼놓고 최순영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시 노조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노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절감하고 있었고 영국노동운동사를 공부하면서 우리에게도 '노동당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무척 많아했어. 어쩌면 '한'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때 상황으로 그게 가능했나? 환상일뿐이지".
'유신철폐'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한다는 사실만으로 똥물까지 먹어야 하는 당시 상황에서 정말 절박했다고 한다. "우리의(YH노조의) 신민당사 점거농성이 유신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럴려고 한것도 아니었고. 단지 우리는 그 길밖에 다른 길이 없었어. 당시 정부는 민주노조를 모두 깨겠다고 순서까지 매겨놓고 있었지. 우리는 동일방직 깨질 때 조직깡패까지 동원하여 똥물을 먹인 사건을 보면서 깨지더라도 우린 그렇게 비참하게 깨질순 없다고 생각했지. 기왕 깨질거면 왕창 깨지면서 최대한 사회적으로 알려내자. 그래야 다른 노조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때 우리 싸우는데 이탈자가 한명도 없었어. 지금도 그건 내 평생 자부심이야. 근데 유일하게 노동운동만이 그런 단결을 만들 수 있어. 그게 노동자가 새 세상을 만드는데 주인이 될 수 밖에 없고, 여전히 노동자가 희망일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해".
이쯤에서 YH뿐만아니라 원풍모방, 콘트롤데이타 등 등 70년대 노조들이 몇 천명씩 되는 조합원인데도 거의 이탈자가 없이 단합된 모습을 보인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의외로 최씨는 아주 원론적인 그러나 다시 새겨보게 하는 답변을 했다.
"그건 기술이나 방법이 아니야. 당시 노동자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에 오히려 정말로 뭉치지 않으면 안됐던 거지. 아직도 여전히 어렵지만 그때에 비해 노동자들이 형편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잖아. 그게 뭉치는데는 장애가 되기도 해. 더 중요한건 그때는 다 나이어린 조합원들인데 지부장은 조합원들의 언니이고 엄마여야했어. 조합원 한명을 만나도 이념이전에 '정'을 갖고 만난거지. 간부로서 교육을 받을때도 그렇게 받았어."

*차라리 몸을 파는게 떳떳하지
그는 그만두고 하청공장하면서 돈벌어서 사회복지사업을 하고 싶었다. 근데 같이 노조준비를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사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임이 회사에 발각되었다. 지부를 만들려면 남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한사람 참여시켰는데 이 사람이 공장장한테 몽땅 보고한 것이다. 그는 홍천으로 출장근무가 떨어지고 몇 명은 해고되었다. 그러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 한다. "내 이 회사에 노조를 만들지 않으면 뜨질 않겠다".
노조지부장이 된 후 해고되었다. 그리고는 회사 공장장한테 제의가 들어왔다. "너 하청공장 하고 싶지? 차려줄게. 동생학비도 대줄게. 너 남들은 몸팔아서 동생들 학비대고 하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냐?" 공장장의 제안에 정말 화가 났다. '몸팔아서 동생 교육시키는 것이 차라리 떳떳하다. 동료를 팔아서 동생 공부시키라고?'
그때부터 최씨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본조(한국노총 섬유노조) 표응삼 교선부장은 최씨의 초기 성장을 거의 전적으로 도와준 사람. 원풍 박순희씨를 비롯해서 반도, 동일 등의 노동자들을 소개시켜준 사람도 표부장이었다고. 노조가 이거구나 느끼기 시작했고 아카데미 교육을 받으면서 진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YH폐업 발표 당시, 최씨는 아카데미 교육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하여 임신중이었다. 임신한 상태수감되고, 석방된 뒤 출산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변변히 아이맡길 곳 하나 없는 시절 아기는 활동에 '악'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최씨는 그런 자신의 조건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만들면서 개척했다. 그런마음이 남들보다 먼저 노동운동의 하나로 어린이 집을 생각하고 지역운동 시민운동에 뛰어들게 만든 것이다.
"사실 시의원 출마도 밀려서 했지만 반발도 많았어. 근데 누가 뭐래도 필요하면 해야지. 그런 맘으로 출마했는데 첫 출마때는 언론을 엄청탔어. YH여공 신민당사농성을 주도한 노동자출신 여성후보, 뭐 탈만했지. 당선되고 시의원 활동을 하면서 난 내지역구 주민이 우리 회사 조합원이다. 그런 맘으로 일했어. 주민들 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하고 주민들과 함께 움직이고…그런 활동의 성과로 가능했던게 학교급식사업, 담배자판기추방운동 같은거야. 사실 학교급식사업은 순전히 엄마들이 한 사업이거든. 그러니까 두 번째 선거는 그냥 되는거야. 엄마들이 선거운동다했지".

*"같은 노동자라도 더 어려운 노동자에 신경을 더 썼으면…"
"난 당은 권력이라고 생각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내가 느낀 바로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기본틀이 '함께 잘사는 공동체 의식'이라고 생각해. 근데 당은 권력이 중심이거든. 권력 맛을 보면 사람 버려. 개인권력으로 군림하기 때문에 권력가진 개인을 버리고 다른 사람도 버려. 민주노동당도 기성정당같이 안되려면 밑에, 밑으로부터 권력을 만들어야 해. 그래서 민주노동당 부대표 맡으면서 내가 해야지 생각한게 당원과 노동자 교육이야. 민주노동당과 그 주변으로 모여있는 노동자들을 각성시켜서 당원이 힘을 갖는 정당이 되어야만 민주노동당이 제 기능을 하는거지. 여성할당제도 그래. 이제 어느당이나 다 여성할당 한다는데 뭘로 차별성을 말할거야. 그건 결국 사람으로 말하는거야. 다른당과는 달리 훈련된 여성을 내보내야지. 그 준비를 해야 해".
여전히 노동자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최씨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도 당부를 잊지 않는다.
"여전히 대공장과 중소기업, 일용직 등 빈부격차는 심해. 여성노동자 차별도 심하고.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서 그런 가난한 노동자들의 현실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어".
"여성노동자들이 참 힘들게 싸우는데 '엄마가 너네한테 좋은 세상 물려줄려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나중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거얘요. 힘내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열정과 힘과 힘이 넘치는데 역시 어머니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롯데호텔 공권력 투입 소식에 임산부들부터 걱정하는 최씨의 목소리가 울컥한다.

연윤정 기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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