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노총(MTUC)이 내홍을 겪고 있다. 2010년 12월 지도부 선거가 있었고, 두 팀이 경선했다. 400명으로 구성된 대의원대회를 통해서다. 위원장-사무총장이 한 팀을 이뤄 출마하는데 임기는 위원장 3년, 사무총장 2년이다. 규약에서 사무총장 임기를 2년으로 한 까닭은 노총 활동의 실질적 책임자인 사무총장의 활동 성과를 150명으로 구성된 총평의회(General Council)가 평가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중간평가인 셈이다. 선거 결과 보수파가 이겼고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노총으로서 MTUC의 기능과 역할은 바닥을 쳤다. 가맹조직들의 불만은 끓어올랐고, 올해 초 열린 총평의회에서 사무총장 불신임 안건이 통과됐다.

그런데 쫓겨난 사무총장이 위원장과 사무총장 임기를 다르게 명시한 규약이 잘못됐다며 법원에 제소했다. 1심 판사는 위원장이 3년인데 사무총장이 2년인 것은 규약상 실수(error)라고 판시했다. 노총 규약을 무시하고 노조 자치를 무너뜨린 판결 덕분에 쫓겨났던 사무총장은 MTUC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를 길게 소개한 것은 노조가 자율로 결정하고 해결할 문제를 법원으로 끌고 가는 우리 내부의 ‘사법 의존증’ 문제를 살펴보려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 사법체계와 법률전문가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제공했다고 평가받는 루소는 법이 “언제나 강자와 부자들의 도구”라고 말했다. 정치 지배자들과 부자들이 자신들의 공동이익을 위해 맺는 합의를 성문화한 것이 법인 것이다. 권력과 자원이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치가 가지는 문제를 루소는 날카롭게 분석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법의 보편적 정신은 늘 약자보다는 강자를 편들게 돼 있고, 가진 게 없는 사람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을 편들게 돼 있다. 이런 문제는 불가피하며 예외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률 자체의 계급적 편향성과 당파성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집단의 지위와 속성이다.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이들은 지배엘리트의 지위를 누리며, 역사적으로 일제식민지와 군사독재체제에 부역한 경험을 갖고 있다. 철학과 세계관에서 보수주의에 경도돼 있으며, 경향적으로 사회적 강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이들은 법 앞의 평등을 구현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정반대의 행위를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기 일쑤였다.

세계사를 보면 법률이 민주화되고 법관들이 공정한 판결을 내린 때는 노동자와 민중의 투쟁이 거세져서 민주주의가 전진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이 약하고 민주주의가 퇴보할 때 법은 강자의 도구로 전락했고, 법관은 강자를 편들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법률은 본질적으로 편파성과 부당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법관을 비롯한 법률전문가들은 기득권층이자 지배엘리트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인간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체제인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속성을 지닌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사법체계에 비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사법부 개입 늘수록 노동운동 파편화

대중조직으로서 노조는 총회·대의원대회·중앙위원회·집행위원회·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자치기관들을 규약으로 두고 있다. 이는 조합원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운영에서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증진하기 위해서다. 이런 기관들의 역할과 기능은 노총이나 산별노조 등 노조 상급단체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조합원 규모가 직접 접촉이 가능한 단위를 벗어나 대의(代議)할 수밖에 없는 수준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노조 자체 규약으로 다양한 의사결정단위와 운영기구를 둔 또 다른 이유는 내부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치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다.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관의 판결이나 검사나 경찰의 조사 같은 외부 개입에 의존할 경우 대중결사체로서의 노조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MTUC의 ‘보수파’ 사무총장은 노총 규약의 해석 문제를 사법부로 끌고 가서 자신한테 유리한 판결을 끌어냈다. 이런 처사는 비난받아 마땅한데, 개혁파냐 보수파냐를 떠나 노조 자치기관을 통해 자율로 해결할 문제를 외부세력의 개입에 맡겼기 때문이다. 앞으로 노조의 선거 결과, 규약 해석, 대의원대회 결정사안에서 이견이 발생할 경우 노동자들의 대표가 아닌 “전문적으로 교육훈련을 받은” 법관들이 개입할 여지가 커진 셈이다. 대중조직 운영의 ABC를 위배한 것은 물론 노동운동의 정신을 팔아넘긴 행위다.

노동운동의 ‘사법 의존증’은 한국에서도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노조 자치에 대한 사법부의 개입이 노조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조직 내부의 혼란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제 살만 깎아 먹었다는 평가가 많다. 노조 운영에 사법부의 개입이 늘어날수록 노동운동은 파편화된다. 우리 안의 ‘사법 의존증’ 증세가 어떤지 돌아볼 때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