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금융노조

 

 

 

증권업계에 인력 구조조정 파도가 덮칠 것이라는 우려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증권사의 수익 급감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중 증권회사의 당기순이익은 1조2천408억원으로 2011회계연도에 비해 9천718억원, 43.9%나 감소했다. 62개 증권사 중 15곳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용하다. 삼성증권이 최근 100명의 고용조정을 발표한 것을 빼면 떠들썩하게 구조조정이 이뤄진 곳은 거의 없다. 과연 증권 노동자들은 안녕한 걸까.

답은 ‘아니올시다’다. 구조조정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것도 잔인하게 말이다. 증권사들의 공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증권사 임직원은 지난해 3월 4만3천820명에서 올해 3월 4만2천317명으로 무려 1천503명이나 줄었다. <매일노동뉴스>가 63개 증권사의 공시자료를 분석해 보니 이들 가운데 임원 등을 제외한 1천411명 중 1천13명(71.8%)은 계약직이었다. 감원된 정규직은 398명이었다. 더군다나 올해 초 1개 업체가 영업을 시작해 증권사가 62개에서 63개로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인원감축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는 대량 고용변동의 신고기준에 해당하는 증권사가 10곳이나 됐다. 300명 미만 사업장은 30명 이상, 300명 이상 사업장은 10% 이상을 감원했을 때 신고해야 한다. 100명 이상 감원한 증권사도 동양증권(291명)·미래에셋증권(229명)·푸르덴셜증권과 합병을 완료한 한화투자증권(286명)·대신증권(181명)·삼성증권(132명)으로 5곳에 달했다. 그동안 증권업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속살을 한번 들여다보자.

빨강·노랑·파랑, 증권 노동자의 신호등

“전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아마 재작년(2011년)부터였을 거예요. 주식매매가 끊기면서 회전도 안 되고 거래대금이 많이 줄었죠. 회사가 자산영업을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하반기부터 영업 인센티브 지급 방식을 바꾸겠다고 통보했어요.”

지난 99년 대형 증권사인 A사에 입사한 나영민(41·가명)씨는 지난해 중견 증권사로 이직했다. 회사의 정책 변화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A사에 ‘말뚝’을 박을 거라던 나씨를 흔들었다. 바뀐 정책의 핵심은 성과급 지급 기준으로 표현됐다. 주식위탁 목표치 50억원을 달성하면 100만원을 주고 거기서부터 추가로 인센티브를 주던 방식에서 50억원 달성시점을 ‘0’으로 놓고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자산 유치라는 목표가 새롭게 더해졌다. 7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유치하면 성과급을 주겠다는 것이다. 대개 20억원 수준에 머물던 평균 자산보유 수준을 감안하면 멀고 먼 얘기였다.

A사의 압박 방식은 기상천외했다. 회사 내부망인 관리화면에 직원들의 실적을 ‘빨강’, ‘노랑’, ‘파랑’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신호등처럼. 주식약정이나 자산 유치 정도를 색깔로 표시하고, 목표를 넘으면 파랑 표시가 뜨고, 실적이 좋지 않으면 빨강 표시가 뜨는 것이다. 관리화면에 접속해 일지를 쓸 때마다 신호등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세 달 연속 빨간불이 들어오면 교육 대상이었다. 이른바 ‘실적부진자’ 교육이다. 교육에 들어가면 온갖 모욕을 듣는다는 얘기가 돌았다. 몇 년 전 회사가 장기간 손익분기점(BEP)에 미달하면 교육을 받게 하겠다고 했다가 실제로 시행하지 않은 경험이 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과거에는 의무가 아니었던 일지 작성도 강제됐고 써야 할 내용도 많아졌다. 몇 명의 고객과 얼마나 어떻게 통화를 했는지를 적어야 했다.

“급여는 낮았지만 기본급 비중이 높아서 지금 회사를 선택했어요. 두 달 동안 열심히 고민했어요.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옮기는 결정을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옮기면 오래된 고객은 다 떨어져 나갈 거고, 그만큼 주식위탁 영업하기도 쉽지 않을 게 뻔하니까요. 그런데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목표가 너무 높아졌어요. 거기에서 목표를 못 채우면 어차피 못 받을 건데, 그러면 안정적인 기본급을 주는 곳이 낫죠. A사에서 한두 달 차이로 이직한 분과 이 회사에서 만났는데, 그분 말씀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해요. 저도 그래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약직 권하는 사회

나씨는 자신을 매우 운이 좋은 경우라고 했다. A사가 정책을 바꾼 초기에 ‘탈출’에 성공했고, 게다가 정규직 자리에 들어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새는 증권업계 불황이 겹치면서 직원을 뽑는 곳도 드물고, 뽑아도 예외 없이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기존 직원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연히 말렸죠. 조금만 참으라고요.” 한 중소형 증권사 노조 간부 ㄱ씨가 최근 계약직으로 전환했다는 동료 이야기를 전하면서 한 얘기다. ㄱ씨는 “많지는 않은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직원들이 꾸준하게 나온다”고 말했다. 계약직 전환은 은밀하게 진행된다. 임원이나 지점장들이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들을 찾아가 계약직으로 전환하라고 권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실적이 나쁜데 창피해서 회사를 어떻게 다니려고 하냐. 마음 편하게 그냥 계약직으로 전환해라’, ‘기본급 적게 받아도 하는 만큼 받아 가면 약정 쪼임 안 받고 편하지 않냐’ 이런 레퍼토리가 거듭된다고 한다. 6개월 계약직, 1년 계약직을 받아들이면 그 다음 스토리는 뻔하다. 노조가 이를 파악하고 해당 임원의 징계를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결국 계약직 전환 결정을 바꾸지는 못한다. ㄱ씨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지치고, 압박을 받는 게 괴로우니까 계약직 미끼를 덜컥 잡는 것”이라며 “계약직이 되면 실적 압박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년 사이 일어난 은밀한 구조조정에서도 증권사들의 ‘계약직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몇몇 증권사에서 정규직이 줄어든 반면, 계약직이 증가하는 모습이 확연했다. 정규직을 2천689명에서 2천584명으로 105명 줄이고 계약직을 414명에서 489명으로 75명 늘린 대우증권과 정규직을 2천381명에서 2천372명으로 9명 줄이고 계약직을 174명에서 217명으로 43명 늘린 현대증권 같은 대형증권사뿐만이 아니다. HMC투자증권은 정규직을 836명에서 792명으로 44명 줄이는 사이 계약직을 144명에서 200명으로 56명 늘렸고, IBK투자증권도 정규직을 18명(437→419명)을 줄였지만 계약직은 20명(173→193명) 늘렸다. 하이투자증권과 한양증권·흥국증권도 같은 경향을 보였다.

실적 악화로 계약직이 대폭 잘려 나가는 일과 정규직 자리를 계약직으로 채워 회사의 고용구조가 악화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성과급이 만들어 낸 ‘개미지옥’

“얼마 전 노조에서 상담을 받았던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 담당 상무한테서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채근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도 여러 차례 그랬다고 해요. 그런데 안타까운 게 뭔지 아세요.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이야기예요. 모욕감을 줬던 상무는 용서하겠는데, 같은 지점 동료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실적이 안 좋으니까 지점에서 왕따를 시켰던 모양이에요.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대체 뭐하자는 걸까요.”

한 증권사 노조 위원장이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노조 차원에서 모금을 했는데, 해당 지점과 잘나간다는 그 지역에서만 모금액이 눈에 띄게 적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료의 실적이 나쁘다고 인간적인 미움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나영민씨가 실마리를 줬다. 하도 액수가 바뀌어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던 급여 명세가 그것이다. 회사는 다르지만 급여체계는 비슷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기본급만 받아서는 생활이 힘들죠. 성과급이 오락가락 하니까 어떤 달에는 급여가 많이 나왔다가, 어떤 달에는 적게 나왔다가 그래요. 월 200만원 정도 차이가 날 때도 있어요. 성과급은 조직성과급과 (개인)차등성과급이 있어요. 약정을 못하면 개인성과급도 적고, 거기에 연동되는 조직성과급도 줄어드는 거죠.”

이러니 실적이 안 나오면 눈치를 보고, 그 직원을 보는 동료들의 눈빛이 싸늘해진다는 것이다.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 관계자는 “한 사람의 실적부진자가 우리 지점 전체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나갈 사람은 나가야 된다’는 인식마저 생기게 된다”고 귀띔했다. 임금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문화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취지의 말이 뒤따랐다.

돈 그리고 존엄

증권업계에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도입된 때는 외환위기 이후였다. 영업직은 대부분 약정 실적에 따라 급여의 수준이 달라졌다. 다만 개별 직원들 간 격차는 크지 않았다고 한다. 증권업황이 좋았고, 달성할 만한 수준의 목표치를 줬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의 어려움은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영업점 폐쇄로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증권사 국내지점은 지난해 3월 1천768개에서 올해 3월 1천590개로 178개나 줄었다. 점포 폐쇄에 따른 노사갈등도 폭발하고 있다. 최근 교보증권지부가 22일간 철야농성을 통해 점포 44개를 22개로 줄이려던 회사의 시도를 막아 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노조가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조 유무에 따라 기본급 수준이 결정된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노조가 없는 곳은 성과급 비중이 높고 기본급 비중이 낮다는 것이다. 노조가 없었던 C사의 경우 회사가 일방적으로 연봉기준과 성과급을 정할 수 있도록 명시한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에는 손익분기점(BEP) 기준으로 실적을 120% 달성했는데도 연봉을 동결하고, 최대 25%까지 삭감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연봉삭감 규모를 30~10%까지 특정해 설문조사를 벌이는 곳도 있다. 증권업종본부 관계자는 “급여가 줄면 그 자체로 노동자들은 압박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실적부진자’를 ‘특수영업팀’, ‘고객개척TFT’, ‘전략영업팀’ 같은 다양한 이름을 붙인 부서에 별도로 배치해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 하는 집합교육에서는 강사의 발언이나 내용의 강도가 높아 모멸감을 느낀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SK증권의 경우 2011년 ‘부진자클럽’을 만들어 이들을 따로 관리한다고 발표했다가 노조가 8일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대구지방법원은 자살한 증권사 직원에 대해 산재를 승인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내성적이면서 자존심과 책임감이 강한 망인이 주가 폭락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자신의 업무로 인해 손실보전과 관련해 지점장을 비롯한 동료직원들에게 인사상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심한 죄책감과 함께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입고 우울증 증상이 심화돼 자살을 선택했으니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지점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로 시작해 “죽음으로 죗값을 대신하겠습니다”로 끝맺었다. 증권업종본부에 따르면 요새도 실적 압박이나 투자손실로 목숨을 끊는 증권 노동자들이 매년 2~3명에 달한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을 막을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박스1>

한국의 골드만삭스 나온다더니
“정책실패 책임 외면하는 금융당국”


지난 7일 금융위원회는 '증권사 영업활력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 간 발전적인 기능분화를 유도하는 것이 기본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대형사는 투자은행으로 중소형사는 전문 사업모델로 성장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내용이다. 

영업규제를 완화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유관기관의 수수료를 인하하는 내용 등 대책이 발표됐지만 핵심 내용은 특화된 증권사 신설이나 분사(spin-off)를 허용하는 것이다. 중소형 종합증권사를 자산관리 전문 증권사와 기업금융 전문 증권사로 분화시키겠다는 목표를 예시했다. 이를테면 기업금융 전문 증권사가 되려는 증권사는 영업지점을 따로 떼어 내어 자산관리 전문 증권사가 되려는 증권사에 파는 것이다.

증권 노동자들은 “정부가 증권사를 무분별하게 늘려 이런 상태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구조조정을 핵심내용으로 영업활력을 제고하겠다고 기만한다”고 비판했다. 정책실패를 감추려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정부는 현재 증권사 과당경쟁의 원인이 됐던 자본시장법 제정 계획을 2006년에 밝히면서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투자은행이 나올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무금융연맹은 “금융당국이 진입장벽을 완화해 과당경쟁을 유도하는 바람에 멀쩡했던 사과까지 곪아 가는 형국이 됐다”며 “정부의 이번 대책은 대주주의 투자금 회수를 도울지 모르나 죽어 나가는 증권 노동자의 고용은 안정시킬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은순 교보증권지부장은 “증권노동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꿨던 정책 당사자들이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한다고 부실 증권사들을 부문별로 잘라서 팔 수 있게 하는 걸 자랑스럽게 내놓았다”며 “증권사들이 리테일(소매) 영업을 버리기 쉽게 해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2>


상시적 구조조정 대응 매뉴얼 발간하는 노조
기업변동 유형별 법률투쟁·쟁의행위 지침 담아


최근 점포 통폐합 등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증권 노동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는 다음달 말 배포를 목표로 ‘증권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 현황과 노동조합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과당경쟁이나 약정 강요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사례를 공유하고, 구조조정에 대비해 노사가 고용안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아웃소싱이나 분사·합병·인수·분할·청산 같은 기업변동 유형에 따라 노조가 어떻게 구조조정 대응 투쟁을 벌일 것인지, 인적 구조조정에 대해 어떻게 법률 투쟁이나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지 지침을 주는 내용도 들어갈 예정이다.

증권업종본부는 매뉴얼에서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통한 상시적 구조조정을 주요하게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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