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노조

 

▲ 김은성 기자

 

▲ 김은성 기자

 

▲ 김은성 기자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돼 가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약속한 해직언론인 문제 해결은 진척이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발생한 해직언론인 사태는 공정방송 회복의 다른 말이다. 그 가운데 YTN 해직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YTN 해직기자 6인은 오는 10월6일이면 해고된 지 5년이 된다. 낙하산 사장 반대와 공정보도를 요구한 게 이들의 죄다. 사건의 발단이 된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은 물러났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당시 국무총리실이 YTN을 불법사찰하고 인사 개입까지 한 결과 배석규 사장 취임으로 이어졌다. 문제 해결은 답보상태다.

YTN은 최근에도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과 관련한 검찰 발표 생중계를 중단하고, ‘국정원 박원순 비하 트위터 포착’ 방송을 삭제해 ‘권력의 시녀’라는 뭇매를 맞고 있다. YTN뿐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MBC를 비롯한 언론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YTN 해직기자들이 이달 10일부터 언론이 외면한 ‘언론피폭지’를 찾아 국토순례에 나선 이유다. 이들이 말하는 '언론피폭지'는 마땅히 사회적 이슈가 돼야 함에도 언론의 침묵으로 마치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피해를 입은 현장을 뜻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자택을 시작으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유성기업·삼성전자 온양공장·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제주강정마을·진주의료원·밀양송전탑·4대강 등을 순례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8일 그들의 길에 동행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농성장으로 향하다

오후 1시 울산 신복로터리. 노종면·정유신·조승호 YTN 해직기자들이 <매일노동뉴스> 기자를 맞았다. 17일 제주 강정마을을 거쳐 울산에 막 도착한 상태였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수염이 삐져나왔다. 햇볕에 검게 탄 얼굴은 티브이 화면에서만 보던 얼굴과 사뭇 달랐다. 또 다른 해직기자인 우장균씨는 건강 문제로 잠시 귀가했고, 권석재씨는 지부사무실에서 국토순례 소식을 바삐 전하고 있다. 현덕수씨는 부인을 대신해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돌보고 있다.

이날 순례에는 언론노조 김종욱 YTN지부장·고재열 시사IN 지부장· 박대용 MBC본부 조직국장·탁종렬 조직쟁의실장·배윤호 MBC본부 울산지부장·김진혁 EBS PD 등 13명이 함께했다. 장아영 YTN 기자도 연차를 내고 서울에서 내려왔다.

그런 후배가 대견했나 보다. 대뜸 해직기자들이 장 기자에 대한 칭찬을 쏟아낸다. “씩씩한 열혈기자”,“노조활동으로 부당전보돼도 힘들다고 내색 한 번 안 한 후배”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장 기자는 “선배들과 함께하기 위해 내려왔을 뿐”이라고 쑥스러워했다.

이들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인근 철탑농성장으로 향했다. 이날로 최병승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와 천의봉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245일째가 된다.

지리를 잘 아는 배윤호 MBC본부 울산지부장이 길을 안내했다. ‘해직 5년을 걷는다’는 몸자보와 ‘공정방송’ 문구가 새겨진 파란깃발이 순례단 가방 뒤에서 펄럭였다. 해직기자들의 모자에는 공정방송 사수·낙하산 금지·해직기자들을 상징하는 배지 3개가 달려 있다.

통성명을 하고 순례단과 함께 길을 나섰다. 구름이 햇볕을 가려줬지만 변덕스런 장맛비를 뿌렸다. 후텁지근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순례단은 시속 4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날까지 160킬로미터를 걸었다. 조승호 기자는 순례단 단장으로 ‘악역’을 맡고 있다. 조 기자는 “지난 일주일간 걷기와 동료들의 건강문제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이제야 몸이 햇볕에 적응돼 순례와 그간의 투쟁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2008년 10월6일. 그들은 구본홍 사장 반대투쟁을 하다 해고됐다. 해고무효소송은 대법원에서 2년 넘게 계류 중이다. 1심에서는 6인 모두 전원 승소했다. 2심은 1심을 뒤집고 3명은 해고, 3명은 무효 판결을 내렸다. 당시 해직자들은 3대 3으로 나뉜 것을 두고 기준이 뭐냐며 갑론을박했다고 한다. 5년 새 해직자들의 부친 세 분이 작고하고, 세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징계가 반복되면서 당사자와 가족에게 갑상선암이 다수 발병하기도 했다.

조승호·정유신 기자는 “YTN 투쟁을 지켜 주셔서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 기자는 “잊혀진 투쟁이 된 건 아닐까 두려웠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시민들의 응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웃었다.

조 기자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시설 ‘와락’을 기억에 남는 현장으로 꼽았다. 그는 "해직자 가족들이 함께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며 “그간 우리들이 부담을 가질까 봐 힘든 내색 한 번 안하는 가족들이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조 기자의 부인은 2010년 7월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최근 건강을 회복했다.

“시민들 호응에 큰 힘 얻어”

50분 걷고 10분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울산 태화강이 나왔다. 태화강을 둘러싼 십리대밭은 장관이었다. 순례단은 그 풍경에 환호하고 해를 가려 준 구름에 고마워했다.

장아영 기자는 “오랜 투쟁에 지치지 않도록 후배들이 나서 분위기 전환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선배들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다”고 연신 미안해했다. 장 기자는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지쳐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희망펀드’에 참여하기 위해 YTN에 남아 있는 동료들도 적지 않다”며 “함께 걸으며 기자로서 초심을 다잡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YTN지부는 조합비로 ‘희망펀드’를 만들어 매달 해직자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EBS <지식채널e>에서 '영국 광우병 파동'을 제작한 후 다른 부서로 발령 난 김진혁 PD도 연차를 내고 동행했다. 김 PD는 “같은 언론인으로서 YTN 투쟁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YTN 투쟁은 상식을 지키는 싸움"이라며 "해직자들의 현장 복귀를 위해 언론인들이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코미디가 돼 버린 보도세태를 얘기하며 걷는 사이 철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몸이 땀에 젖고 발걸음은 서서히 무거워졌다. 발바닥에는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또 한 명이 순례에 합류했다. 김중희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사무처장이 순례단을 마중나온 것이다. 김중희 처장과 순례단이 손을 맞잡았다. 김 처장은 “그간 함께하지 못해 미안했다”며 “전국 곳곳에서 YTN 해직자들의 복직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고 했다.

시커먼 남자들의 행렬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보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태화강 인근 공원에서 운동을 하던 이종수(62·가명)씨는 "힘내라”고 외쳤다. 이씨는 “결국 나쁜 사람이 지는 게 세상 순리”라며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국민의 권리를 위해 공정방송을 만드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현대차 - YTN 해고자들 "상식 인정" 한목소리

오후 5시. 장마를 알리는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3.5킬로미터를 걸었다. 드디어 현대차 철탑이 나타났다. 고공농성장 앞을 지키고 있던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순례단을 맞이했다. 천의봉·최병승씨가 철탑 고공농성장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고공농성장의 크기는 1.3평이다. 이들은 농성을 하는 대가로 각각 하루에 30만원씩 한국전력에 벌금을 내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호텔급 투숙을 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들의 투쟁 이유도 순례단 만큼이나 단순하다. 법원 판결을 따르라는 것.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차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다.

노종면 전 YTN 지부장이 농성자들과 전화로 통화를 했다. 노 전 지부장은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농성자들에게 건강을 당부했다. 최병승·천의봉씨가 “반드시 복직하라"고 격려했다. 노 전 지부장은 “누가 누구를 걱정하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합원들 간 간담회가 이어졌다. 서로 배지를 교환하고 각자 처한 상황을 전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의봉이는 ‘밑에 있는 동료들 배신하지 말고 끝까지 위에서 버텨라’는 어머니 당부 때문에 내려오지도 못하는 상항”이라며 “YTN 해직자들이 빨리 복직해 자본이 더 악랄해지는 것을 막아 달라”고 주문했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성공회대 노동대학장)도 이날 울산에 강연을 왔다가 철탑에 들렀다. 하 소장은 “사건 현장에 직접 가본 언론인과 그렇지 않은 언론인은 큰 차이가 있다”며 “빨리 복귀해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시청자 모두의 권리 회복 문제로 제대로 보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정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철탑을 떠나는 순례단 분위기가 사뭇 무겁다. 순례단은 계속 뒤를 돌아봤고,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그때마다 손을 흔들었다.

정유신 기자는 “대법원 판결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사측 태도에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다”고 했다. 그는 “언론의 외면은 왜곡으로 이어지고, 이는 자본과 권력의 타락을 낳는다”며 “과거 제대로 보도를 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복귀하면 제대로 보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싸우겠다"고 답했다.

해직언론인, 방송정상화와 함께 풀어야

저녁 7시. 긴 해가 노을을 드리운 사이 저녁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목이 타는 것 같아 차가운 맥주가 간절했다. 단 한 잔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순례 원칙상 '금주'란다. 타는 목을 사이다로 축였다. 사이다 맛이 쓰디썼다. 언론노조가 순례단에게 “21일 국회에서 ‘해직언론인 등의 복직 및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해직언론인법)' 공청회가 열린다”고 연락해 왔다. 공청회 참석 여부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결국 “해직언론인법 공청회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자”로 의견이 모아졌다.

탁종렬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은 "그간 여러 번 여야 합의로 약속했던 해직언론인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새 정부는 물론 민주당에 대한 기대도 접었다”고 비판했다. 탁실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 공정보도와 낙하산 반대를 요구하다 해직당한 언론인들의 복직 문제가 새 정부에서 물타기로 대충 넘어가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YTN 해직 사태는 방송의 공정성 회복과 지배구조 개선 등 방송 정상화의 틀 속에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김재철 MBC 사장·구본홍 YTN 사장 개인의 사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언론계 안팎에서는 "MBC·YTN 모두 공정방송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녁 8시38분. 순례단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울산 MBC뉴스에 순례단 소식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조승호 기자는“시민들이 기억해 주고 지켜본다는 것에 감사하고 미안하다”면서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막상 달라지는 게 없으면 공허감이 커질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언론이 권력 감시 못할 때 국민이 피해”

동행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갔고 YTN 해직기자들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잠식 휴식을 취한 뒤 밤 10시30분 상황회의를 하러 다시 모여 들었다.

노종면 전 지부장은 YTN사태를 권력의 보도 장악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 순례는 방송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조합원들과 함께 길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이라며 "순례가 공정방송과 언론위기 해법을 찾는 데 언론인이 함께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방송이 공정보도를 하는 것은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 언론인으로서 상식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YTN 해직자들이 투쟁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 전 지부장은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대한 감시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이어진다"며 "진짜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상황회의를 열자 새로운 행선지가 만들어지고 만나야 할 사람들이 새로 생겼다. 언론피폭지는 그만큼 많았다. 상황회의를 마치자 이들은 다시 기자로 돌아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언론피폭지 여정을 기사화했다. 그리고 취재한 내용은 YTN 지부 홈페이지(ytnmania.com)·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 등에 게재된다. 그들은 동영상 가편집을 하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며 수첩에 일지를 썼다. 그러는 사이 시계는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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