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십수 년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과 양대 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의 노력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 비정규직 규모는 800만명대 이하로 떨어지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고 그 격차는 매년 커져 왔다. 게다가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이 200만명을 웃돈다. 입 아프게 지적돼 왔지만 노동운동의 근본적인 반성과 과학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현재 전국적 쟁점이 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도 진지한 고민과 새로운 방향 모색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파격적 조치가 절실하다. 그 핵심은 사용자 책임 회피의 온상이 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사용 금지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 있으며 가장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고용형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만연한 중간착취 제어와 근절 없이 좋은 일자리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이른바 풍선 효과로 불렸던,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외주화로 간접고용을 악용한 사례를 얼마나 많이 목도했는가.

근래 급증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도 모호해진 사용자 책임의 확산에서 시작돼 위장자영업자로 전락해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것이므로 간접고용의 폐해가 확대·심화된 것이라 할 것이다. 결국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최우선으로 매듭짓지 않고선 비정규직 문제 개선은 민간영역에서는 한 발짝도 진전되기 어렵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개선하고 해결하느냐다. 조직노동의 힘은 취약하고 노동자의 직접고용 원칙에 대한 자본의 저항이 완강한 데다 그들을 대변하는 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양대 선거의 결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 금지는 더욱더 힘겹고 요원한 과제가 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도 묵살한 채 무데뽀로 버티는 한국 최대 제조업체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행보를 보면 절망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진다. 한편 비정규직 남용과 양산을 조장해 온 권력과 자본의 대척점에 선 조직노동과 비정규직 운동 주체들 사이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비정규직 철폐 주장이 드세다. 노동의 주체적 역량과 객관적 정세를 감안한 실질적인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 로드맵에 대한 착안과 고민 없이 반대와 저항만으로 자족하는 관성적 태도가 도처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단언하건대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비정규직 고용형태 가운데 가장 먼저 폐지돼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철폐 구호로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기회구조와 주체적 조건을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단기간에 없앨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단계적 감축·소멸 전략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거에 뒤집는 혁명적 방식의 비정규직 철폐 전략과 담론은 실제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이해와 요구에 종종 반한다. 즉각 철폐를 목표로 한 투쟁은 불모의 흥분과 미미한 성과로 일단락되기 일쑤여서 대중적인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전체 노동자의 10%를 차지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내적 구성은 파견노동 0.5%, 용역노동 4.4%, 호출노동 5.0%(측정오차 감안한 재구성비)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증가속도는 호출노동·용역노동·파견노동의 순서를 보인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가운데 열악한 부분일수록 상대적 비중이 클 뿐만 아니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민주노총의 핵심 입법과제로 등극한 파견법 철폐는 투쟁구호로만 합당할 뿐 입법과제 쟁취전략 관점에서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정규직 중심의 책임회피 적당주의 전략에 불과하다. 현실에 맞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총력을 다해 쟁취해야 할 요구를 정립하지 않고 낡고 녹슨 무기를 다시 꺼내 든 격이다.

간접고용 폐지를 지향하되 단계적 감축·소멸 전략의 관점에서 입법·정책 대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질적이다. 십수 년의 비정규직 현장투쟁과 권리보장 입법투쟁, 조직화 성과에 바탕해 이제는 현실에 굳건하게 발 딛고 서는 전략을 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우선 과제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법과 로드맵을 둘러싼 합리적 공론과 논쟁의 장에서 구두선에 머무르는 철폐주의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향후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전략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이 생산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길 소망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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