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간접고용 비정규직 중 파견노동은 용역노동에 비해 사용업체가 지휘명령권을 직접 행사하며 더 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용역노동보다 먼저 폐지돼야 한다. 파견노동 중 비자발적 생산직부문부터 먼저 없앤 다음 일체 파견노동을 폐지하는 단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의 말이다. 최근 간접고용 문제를 다룬 <사라져 버린 사용자 책임-간접고용 비정규직 실태와 대안>(매일노동뉴스 펴냄)을 공동집필한 조 교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단기간 없앨 수 없다면 단계적 감축·소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이 책에 대한 북토크가 진행됐다. 저자 대표인 조돈문 교수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구권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부지부장·차승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장이 대화를 나눴다. 사회는 박성국 매일노동뉴스 대표가 맡았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지난해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공동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프로젝트의 연구성과를 담은 보고서가 책 출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진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과)·남우근 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 노상헌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손정순 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조임영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정승균 전 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허윤진 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사회 : 책을 발간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조돈문 : 인권위 연구과제로 공모해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중간보고를 할 때만 해도 인권위 내부 분위기가 싸늘했다. 하지만 최종 보고서가 나오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중 소외됐던 직종을 중심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조사를 실시했다. 구직자와 사용업체를 매개하는 노동시장 중개기구 관계자를 대상으로도 심층면접조사를 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실태를 분석한 첫 사례다. 정책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외국사례를 조사해 대안 또한 깊이 있게 다뤘다.

이남신 : 연구용역 결과를 출판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인권위에 감사드린다. 이 책은 비정규직 운동의 10년 역사와 핵심 쟁점을 총괄하고 있다. 책이 많이 읽혀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데 노동계가 생산적인 토론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회 : 파견노동·호출노동·용역노동·특수고용을 간접고용의 고용형태로 분류하고 있다. 그중 호출노동으로 분류되는 간병인 노동자인 차승희 지부장에게 당사자 얘기를 들어보자.

차승희 : 돌봄노동이 사회서비스로 제도화됐지만 저임금과 낮은 처우로 질 낮은 일자리의 대명사가 됐다. 청소·간병노동자들이 잇따라 에이즈환자 주삿바늘에 찔리는 사고를 당해도 병원은 감염예방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를 산재로 보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재작년에 진정을 냈는데 답이 없다. 조사관만 3번 바뀌었다. 간병인의 경우 평균 시급이 2천700원으로 24시간 6일간 근무하며 하루 쉰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동자성 불인정으로 인해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타인을 돌보다 자신은 병을 얻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으로 간호조무사에게도 간병업무를 허용했다. 일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 : 구권서 부지부장이 경험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떠한가.

구권서 : 전 공공운수연맹 사무처장 시절 독일에 연수를 갔다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의미의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없어 비애를 느꼈다. 비정규직은 있어도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으로 규제하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비정규직은 없었다. '사용업체-파견업체-노동자'로 이어지는 삼각 고용관계를 끊어야 한다. 노동시장 막장드라마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간접고용 노동자를 직접고용한 것을 보면 비정규직 운동의 성과가 사회적 힘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젠 간접고용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진짜 사용자인 대학이 직접고용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눈물의 씨앗이자 막장드라마의 근원인 중간착취를 없애야 한다.

사회 : 중간착취를 하는 노동시장 중개기구 실태를 소개해 달라.

조돈문 :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을 보면 중간착취가 금지돼 있다. 그런데도 5만여개의 업체가 난립해 있다. 한국은 중간착취의 천국이다. 영리 목적의 노동시장 중개기구들이 노무제공자에게 3개월 임금의 4% 이내로 제한돼 있는 법정 수수료를 초과하는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기타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있다. 중간착취가 만연해 있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이 더 심각하다. 대리운전 노동자와 퀵서비스 노동자는 콜당 20% 이상의 수수료를 지불한다. 공적 중개기구에 관한 정보가 없다 보니 사적 중개기구로 노동자가 몰리고 착취현상이 심해지는 것이다.

스웨덴은 파견업체협회가 노동조합총연맹에 먼저 단체교섭을 요구한다. 소속 파견업체들이 노동관계법이나 단체협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협회에서 제명하는 등 자기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파견업체들은 단협에 따라 노무제공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비파견 대기기간에도 평균임금의 85~90%를 보장한다. 이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우리나라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사회 : 연구성과를 토대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면.

이남신 : 대안을 논의하면서 내부 격론이 있었다. 파견노동 철폐냐 아니냐만을 놓고 입장을 묻는다면 더 이상 발전적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운동가들은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로드맵을 책임감 있게 제시해야 한다. 이 책이 그러한 논란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조돈문 : 파견법 폐지를 외치는 노동계가 정작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에는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노동계의 객관적 현실이다. 세계 굴지의 현대차가 '떴다방' 같은 행태를 벌이는 데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크다. 비정규직을 한 번에 없앨 수 없다면, 가장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부터 소멸시켜 나가는 단계적 전략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현실을 고려해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특정 사유에 한해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하는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및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비정규직 전반의 사용을 규제하며 규모를 축소해 가는 가운데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사용자의 책임 기피 의도가 강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사용을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개별 기업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의 책임을 지고 비정규직을 이용해 노동력 사용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되,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비상시적 업무의 총수요량과 비정규 노동자의 총공급량을 관리하며 개별 수요와 공급을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간접고용 사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와 병행할 때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보다 효율적으로 감축·소멸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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