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보기에 따라서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계의 대폭인상 제안에 대해 사용자측은 아예 동결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노사 양측의 근거나 이유도 예전과 변함이 없다. “살기 어렵다”, “경제가 어렵고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들이다.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마도 이달 말일에나 기습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이 통과될 듯하다. 사측이나 노측 위원 중 한쪽은 퇴장할 가능성이 높다. 매년 되풀이되는 모습이다.

1988년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이래 매년 같은 방식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합리적인 논의와 협상은 간곳없다. 노사 양측의 실력 행사장 그 이상도 아닌 모양새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을 논의하는 자리이길 바라는 기대는 갖지 않는 게 속 편하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구경해야 하는 걸까. 생각건대 최저임금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위상을 고려한다면 현재와 같은 논의구조는 확실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는 논의 의제와 방식에 있어 모두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도가 갖는 사회적 가치는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본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결정한다는 기본적 효과 외에도 차상위계층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 이와 같다면 논의 틀도 이에 걸맞은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위원회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 상황에 맞게 변화를 꾀할 때가 됐다는 말이다. 핵심 열쇠말로는 독립성과 대표성을 꼽고 싶다. 최저임금위의 파행 운영과 결과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현행 법령은 고용노동부장관이 추천해 대통령이 위원을 임명하도록 돼 있다(최저임급법 시행령 제13조3항). 행정부가 구성되면서부터 독립성 시비가 일게 되는 것은 자연적이다. 해결방안은 이미 많이 제시돼 있다. 의회 산하에 설치하거나 전혀 별개의 독립기구로 운영하는 안도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은 것들이다.

대표성은 더 큰 과제일 것이다. 노사정 각 대표자로 구성됐다고는 하지만 정작 최저임금 노동자는 위원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400만 최저임금 노동자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200만 초저임금 노동자,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에 놓여 있는 200만 이상의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위원이 없다. 사측과 정부는 대부분 경제·경영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다. 전문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대표성과는 거리가 있다. 노동계는 더 무거운 비판을 받아야 한다. 과연 양대 노총이 800만 최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노동자 보호와 조직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머지않은 시일에 이 같은 논의가 이어지길 희망한다. 아울러 올해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입장을 십분 고려했으면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을 어렵게 한다. 재원이 없다”는 항변을 잘 새겼으면 한다. 세계 8위권 경제 규모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근본 원인을 찾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실제 지급여력이 없는 것인지, 불필요한 비용 지출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것인지 등에 관한 실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최저임금 사업장 사용자의 어려움이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됐다면 이를 풀어 주는 노력을 함께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나 어음결제 관행만 없애더라도 최저임금 인상에 필요한 돈은 충분하다는 어느 중소기업 대표의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앞서 보듯이 회의 진행은 과거 통념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외부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한편으로는 희망을 갖게 한다. 나름대로 정부가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쏟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확실히 인상하겠다는 대선공약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박근혜 정부 출범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신뢰를 강조하는 정부라니까 한번 믿어 보자.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