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몇 년간 한국 제조업 기업들의 도드라진 변화 중 하나는 경영권 승계다. 현재 제조업에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 대부분은 70년대 중반에 만들어져 80년대 3저 호황을 타고 성장했다. 70년대 중반 기업을 만들 때 사업주들의 나이가 30~40대였고, 지금은 70~80대에 이르렀다. 여러 자동차 부품사들이 속해 있는 금속노조 사업장의 경우 2~3년 전부터 시작해 앞으로 5년간 경영권 승계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경영권 승계 시기에 금속노조는 여러 준비를 해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승계는 단순히 회사 대표이사가 바뀌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심각한 노사갈등이 발생하는 사례도 많았다.

지난해 직장폐쇄와 용역깡패 투입으로 홍역을 앓은 SJM은 대표적으로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사측이 노조와해 공작을 편 사례다. SJM의 명예회장은 70세가 넘어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면서 2009년부터 회사 지분 승계를 주도적으로 해 온 재무이사를 노무담당이사로 발령하고, 금속노조 와해를 꼼꼼하게 준비했다. SJM 명예회장은 아마도 자신과 함께 금속노조도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왕국에서 모든 것이 뜻대로 되나 금속노조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고, 이런 금속노조를 아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했을 것이다.

유성기업도 현대자동차의 지배·개입과 더불어 경영권 승계 이슈가 노조탄압의 동기가 된 사례다.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줬지만 이른바 ‘상왕 정치’로 경영에 관여해 오던 89세의 명예회장이 90세를 앞두고 2011년 금속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와해 공작에 나섰다. 2012년 명예회장은 금속노조가 교섭권을 잃자 곧 명예회장직에서도 물러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경영권이 회사를 설립한 1세에서 2세, 3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노사관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1세 사업주의 경영권 승계전략, 2세 사업주의 반노조주의 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금속노조 사업장의 사업주는 87년부터 현재까지 금속노조와 많은 갈등을 겪으며 사업을 해 왔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깡패 한두 번 안 불러 본 사업장이 없고, 지금도 기회만 된다면 노조를 없애거나, 회사에 고분고분한 어용노조를 만들고 싶어 한다. 금속노조만 없으면 현장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외주가 가능한 부분은 모두 외주화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업주들의 일반적 생각이다. 그래서 이들은 앞의 예처럼 자신이 퇴임할 때 자신과 함께 금속노조도 회사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강하게 가진다.

1세 사업주가 경험적으로 금속노조에 적대적이라면 2세 사업주는 이념적으로 반노조주의인 경우가 많다. 2세 사업주들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경영학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배우는 미국식 경영학은 노조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회사 지분을 물려받은 2세 사업주는 회사 성장의 경험을 종사자들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사자에 대한 애정도 크지 않다. 금속노조와 직접 부딪혀 본 경험도 많지 않은 탓에 기존 노사관계를 쉽게 부정하기도 한다.

두 세대가 노조파괴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는 가운데 정부의 반노조 정책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복수노조 제도처럼 금속노조의 사업장 교섭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사업주들은 무모할 만큼 공격적으로 노조파괴에 나선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조파괴 공작이 바로 그런 예들이다.

박근혜 시대는 금속노조 사업장들의 경영권 승계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기다. 금속노조가 안일하게 이 시기를 지나가려 하다간 민주노조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크다. 노조의 조직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투쟁·교섭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 사업주들이 금속노조 와해를 아예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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