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남북당국회담은 대결이냐, 대화냐 갈림길이지요. 근데 지금까지 남북 양측이 회담 테이블에 올려놓을 의제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어요. 최대 걸림돌은 6·15 공동행사일 겁니다. 우리 정부가 가장 피하고 싶은 의제지요. 이럴 때일수록 노동자의 힘이 필요합니다."

백대진(49·사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올해 4월부터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노동부문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6·15 남측위가 2005년 출범한 이후 공동집행위원장에 한국노총 인사가 선임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민주노총이 주도했던 노동자 통일사업에서 한국노총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방증이다. 6·15 남측위에는 명예대표와 상임대표, 각계 부문별로 구성된 127명의 공동대표가 있다. 실무적인 업무는 운영위원과 공동집행위원장이 도맡아 한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백 본부장은 "솔직히 그동안 통일부문만큼은 민주노총이 한국노총보다 앞서 갔던 게 사실"이라며 "일촉즉발의 대결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통일부문에서는 민주노총의 열 걸음보다 한국노총의 한 걸음이 소중하다"고 말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남북관계가 경색돼 통일단체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통일사업이 물적·인적으로 취약한 지금, 양대 노총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백 본부장의 지론이다.

“6·15 공동행사, 남북관계 푸는 열쇠”

"대북관계는 자주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백 본부장은 "박근혜 정부가 대북관계를 지나치게 대미의존적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난 정부 5년에 이어 향후 5년도 통일운동 전망이 어둡다는 얘기다.

"남북관계의 긴장이 높을 때는 민간이 주도해서 풀어야 해요. 그래서 6·15 남북 공동행사가 중요해요. 민간 차원의 만남과 인도적 지원이 막힌 개성공단을 뚫을 수 있어요."

백 본부장은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한국 정부가 6·15 공동행사를 의제에서 제외시키려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북측에서는 6·15 공동행사를 강하게 요구하는데 남측에서는 의제로 삼는 것도 꺼려합니다. 그러니까 당국회담 북측대표 문제 같이 우리 정부가 괜한 핑계를 대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거예요.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7·4 공동성명에 무게를 두려고 하니 실무적인 문제도 풀기 쉽지 않죠."

백 본부장은 “그동안 6·15 공동행사가 개최 2 ~ 3일 전에 전격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성사를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계획은 이달 15일 당일행사로 개성에 남과 북의 대표단이 모여 6·15 공동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6·15 남측위는 100여명의 방북단을 구성할 예정이다. 노동부문은 양대 노총 각 3명씩 6명이 참가하기로 하고 이날 6·15 남측위에 명단을 제출했다.

6·15 공동행사가 성사되면 15일 오전 6·15 공동선언 13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오후에는 각 부문별 모임이 개최된다. 백 본부장은 “남북 노동자가 만나면 개성공단을 다시 이을 수 있는 방도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개성에 전력공급이 끊기고 개성주민들의 상수도 공급도 중단됐다. 기술자로 파견됐던 전력노조와 수자원공사노조 조합원들이 남측으로 철수했기 때문이다. 백 본부장은 “개성공단 피해기업 보상도 중요하지만 시급한 것은 전력과 물공급”이라며 “남북의 만남이 성사되면 이를 노동자부문 의제로 삼아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환 노동상 첫 수상자는 고 장진수 국장”

백 본부장에게 올해 또 의미 있는 일은 제1회 김태환 노동상을 제정한 것이다. 고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은 2005년 레미콘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하다 회사측이 고용한 대체인력의 차량에 치여 숨졌다. 이달 14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8주기 추모제가 열린다. 한국노총은 이날 제1회 김태환 노동상을 고 장진수 한국노총 조직국장에게 수여한다. 고 장진수 국장은 2007년 12월 한국노총 정책연대 조합원 총투표 업무를 위해 비상근무를 하던 중 심장마비로 순직했다.

“김태환 열사를 두 번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비정규직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다 간 동지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김태환 노동상을 만들었습니다. 김태환 학교도 비상설적으로 개설할 생각이에요. 자기 한 몸을 바쳐 노동운동에 헌신한 모습을 우리가 따라야지요. 첫 번째 상을 고 장진수 국장이 받는 건 누가 봐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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