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등장한 뒤 정치권 의제로 '노동'이 떠오르는 모양인데요. 포괄적인 정치적 수사 정도로 '노동'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중심에 둔 논쟁은 아닌 것 같아요. 정부나 정치권은 현장에 와서 노동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4년을 넘긴 쌍용차 문제를 외면하면서 어떻게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해고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나요?”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의 말이다. 지난달 9일 171일 만에 철탑농성을 중단한 한 전 지부장은 3일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쌍용차 사태를) 외면하니까 너무 힘들다”는 말로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에 대한 느낌을 대신했다.

출범 이후 100일을 맞은 현재까지 “노동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4일 출범 100일을 맞는다. 국정기조 전반에 걸쳐 노동 문제 해결의지가 약하고, ‘고용률 70% 달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주요 노동현안에 관해 외면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 '노동'=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노동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나타난 특징적인 양상은 복합적인 노동 문제가 고구마 줄기 엮듯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을 방문했던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통상임금 논란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체계 문제를 상기시켰다. 이는 다시 적정소득을 올리기 위해 노동자들이 잔업·특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되짚어 보게 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정년연장도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논의를 촉발시켰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보편적인 임금체계로 자리 잡았던 연공급제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성과·직무 중심 임금체계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경영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부 역시 고령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임금체계에 손을 댈 때가 됐다는 입장이다.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노사정의 기싸움이 박근혜 정부 내내 계속되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현안은 노동시장 안에 오랜 기간 잠복해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다. 정부 스스로 적극적인 개선의지를 갖고 밀어붙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쌍용차 정리해고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재능교육교사로 대표되는 특수고용직의 노동권 보호요구에 모르쇠로 등을 돌렸다.

이들 현안이 우리사회 양극화의 주범인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를 대변하고 있음에도 청와대는 물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조차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정부는 고용의 ‘늘지오’를 내세웠지만, 노동자 700명이 거리로 내몰리게 된 르네상스서울호텔 매각사태가 보여 주듯 정부는 있는 일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사용자의 위치에 있는 공공부문 노사관계도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 출범과 시점이 맞물린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고, 공무원노조 설립신고도 여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최대 노동현안으로 부각된 진주의료원 사태는 정부·여당의 ‘노조 혐오주의’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공공의료시스템에 '돈의 잣대'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정부, 적극적 중재자로 나서야=이런 가운데 한국노총과 한국경총·노동부는 지난달 30일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협약’에 서명했다. 정부는 이를 추진동력으로 하는 ‘고용률 70% 로드맵’을 박근혜 정부 100일째인 4일 발표한다.

로드맵의 핵심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통해 노동시장 진입이 어려운 청년과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 협약에 동참하지 않은 민주노총 등은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비정규직 현실에 눈감은 정부가 내놓은 시간제 일자리라는 해법은 자칫 새로운 불평등을 알리는 서막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 문제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이제라도 산적한 노동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 등은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직 같은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저해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정부가 이러한 신호를 무시하는 한 '국민행복'은 허황한 말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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