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를 제안하면서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미명하에 만들어진 일자리들은 ‘나쁜 일자리’였다. 사실 만들어졌다는 표현은 어불성설인데,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기보다는 멀쩡한 정규직 일자리가 저질의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됐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규직 일자리는 양질의 좋은 일자리였을까. 사실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점 빼고는 뭐가 좋은지는 모호하다.

‘좋은 일자리’라는 말이 개념화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어진 데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공이 크다. ILO는 조직 목표로 7가지를 내세운다. △모두를 위한 좋은 일자리 △고용창출 △공정한 세계화 △일터의 권리 △사회적 대화 △사회적 보호 △빈곤퇴치가 그것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자리(decent work)가 ILO의 제일 목표라는 점이다. 좋은 일자리라는 개념은 99년 제87차 ILO 세계총회에 제출된 ILO 사무총장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다. ILO는 보고서에서 좋은 일자리를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정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생산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남녀 모두를 위한 기회”로 규정하면서, “일자리 창출 자체가 아니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며, 고용의 양은 고용의 질과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좋은 일자리’의 4가지 요소

ILO는 좋은 일자리가 4가지 요소를 가진다고 말한다. 고용기회·노동기본권·사회복지·사회적 대화다. 생산적인 고용, 즉 좋은 일자리 없이는 괜찮은 생활기준·사회경제적 발전·자아성취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기회가 중요한데, 핵심 노동층은 포섭하고 주변부 노동층은 배제하는 식의 고용은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에 문제를 일으킨다. 따라서 좋은 일자리의 대상은 자영업·가사노동·비정규직을 포괄해야 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만족감·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 양질의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일자리만이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을 위한 토대가 되며, 건강한 노사관계와 정치안정,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

좋은 일자리의 두 번째 요소는 노동권이다. 핵심은 ILO 기본협약으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 철폐 △아동노동의 실질적 철폐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 철폐 등 4개 영역에 걸쳐 8개 핵심협약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나라는 아동노동 관련 2개 협약과 차별금지 관련 2개 협약 등 4개 협약만 비준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87호)·단체교섭권(98호)·강제노동 금지(29호·105호) 관련 협약은 ILO에 가입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과 공공부문에서 노조 결성과 가입이 법률적으로 어려운 것도 이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이한 점은 한국 정부가 강제노동 금지협약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는 공익근무요원이나 의무경찰의 존재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미 비준된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금지나 아동노동 금지협약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청소년 알바’가 대표하듯 서비스산업에서 아동(청소년)노동은 일상이 됐고, 이들에 대한 보호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차별금지는 ‘동일노동-동등대우’ 원칙이 공공기관에서조차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그 이행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조직노동의 참여와 개입이 관건

‘좋은 일자리’의 세 번째 요소는 사회복지다. 사회복지는 시장의 난폭함을 제어하면서 인간 생존의 기본 수요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사회 안정성을 증진하고 사회불안을 줄이며, 국가가 사회경제적 변화에 보다 쉽게 적응하며, 산업과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안전판을 제공함으로써 노동환경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좋은 일자리’의 마지막 요소는 사회적 대화다. 사업장 수준의 단체교섭부터 전국 수준의 노사정 협의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대화가 존재한다. 사회적 대화에서는 정부의 중립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국가는 사용자·노동자·기타 그룹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 전제조건은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단체교섭을 촉진하는 것으로 노동기본권 실현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좋은 일자리는 정부가 기술-관료적 접근법을 갖고서 예산을 투입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가들의 시혜나 선의로 만들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업장에서 정부정책에 이르기까지 일자리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발언하고 참여하는 통로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좋은 일자리를 실현하는 열쇠는 조직 노동의 참여와 개입을 어떻게 이끌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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