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자은 기자

“고객님, 죄송합니다. 직원들의 생존권과 호텔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입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르네상스서울호텔 입구에는 고객들에게 투쟁이유를 설명하는 플래카드 수십 장이 나붙었다.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위원장 서재수)는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호텔 정문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하루 경고파업을 벌였다. 노조는“25년 동안 흑자경영을 한 르네상스호텔이 지주회사인 삼부토건의 경영부실로 인해 철거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호텔에서 흙 한 줌이라도 건드린다면 호텔 직원 700명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출정식에는 조합원 400여명과 한국노총 산하 조직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르네상스서울호텔은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88년 7월 개관했다. 지하 2층, 지상 24층 규모에 439개의 객실을 갖춘 특1급 호텔이다. 그런데 호텔의 지주회사인 삼부토건이 2011년 호텔을 담보로 우리은행 등 채권단에게 대출받은 7천500억원을 상환하기 위해 호텔 매각에 나섰다. 지난달 10일 삼부토건과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지스자산운용은 호텔을 철거하고 오피스텔과 상업시설이 갖춰진 복합빌딩을 신축할 예정이다. 노조는 서울 여의도 이지스자산운용 본사 앞에서 지난달 23일부터 매일 항의집회를 벌이고 있다.

“정규직 전환 1년도 안 됐는데…”

호텔 라운지에서 일하는 신아무개(25)씨는 2010년 10월 입사해 2년 만에 정규직이 됐다. 신씨는 “정규직으로 채용되기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정규직이 된 지 1년도 안 됐는데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조리부에서 일하는 최창원(37)씨는 올해 8월로 예정된 결혼을 미루기로 했다. 최씨는 “직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정대로 결혼식을 치를 수 없었다”며 “여자친구와 가족들도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직원 700여명 중 88년 호텔이 처음 개관했을 때부터 일한 직원은 60여명이다. 88년에 입사한 이진호(50)씨는 “직원과 가족 3천명의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며 “삼부토건도 이지스자산운용도 직원들의 생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협상을 진행해 정말 화가 났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씨는 “르네상스서울호텔에는 오래된 고객이 많다”며 “고객들이 직원들과 함께 호텔의 상황을 걱정해 주고 있어 우리가 파업에 들어가도 지지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인(48)씨는 “25살 때 큰 꿈을 안고 호텔에 입사했고 이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을 낳았다”며 “내 청춘이 담긴 호텔을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꼭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파업 출정식에는 관광서비스노련 산하 40여개 노조 대표자와 조합원들이 연대했다. 서울가든호텔노조 조합원인 조해묵(41)씨는 “가든호텔도 내년 1월 재건축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 조합원들의 고용 문제로 회사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르네상스서울호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상석 하얏트리젠시인천노조 사무국장은 “같은 호텔 종사 노동자로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호텔 철거가 저지될 때까지 연대투쟁을 벌이겠다”고 힘을 실었다.

이날 밤 열린 호텔 지키기 촛불 문화제에는 조합원의 가족들도 참석했다. 호텔 조리부에서 일하는 조합원의 딸 양서연(10) 어린이는 “생일 때 친구들을 초대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 준 아빠가 자랑스러웠다”며 “아빠가 사랑하는 호텔에서 좋아하는 요리를 계속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병균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삼부토건이 매각가격을 좀 덜 받더라도 호텔을 운영하겠다는 매수자가 호텔을 인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노총은 정치권을 압박해 호텔 철거 문제를 공론화하는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다음주까지는 서울 여의도 이지스자산운용 본사 앞에서 집중 투쟁을 벌이고 이후 우리은행과 서울시·정부를 향한 투쟁으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