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강원도 홍천군에서 전기 선로 개설·보수 업무를 하는 전기원 노동자 A씨는 3~4년 전부터 살이 부쩍 올랐다. 하루 8시간 노동이 정착되면서 아침밥을 챙겨먹고 출근하는 버릇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남 광주시에서 목공일을 하는 B씨는 최근 가족과 사이가 좋아졌다. 그가 가입한 노조가 힘을 써 지역 건설사가 지역민을 우선 고용하면서 B씨의 떠돌이 생활도 멈췄다.

건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바뀌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줄고, 체불임금에 대한 대책이 마련됐다. 작업환경의 안전을 가져 올 권한도 주어지고 있다. 그들은 '노가다'를 넘어 점차 '노동자'로 다가가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는 건설노동자들이 극히 소수라는 점이다.

건설 현장에 확산되고 있는 하루 8시간 노동

그동안 건설노동자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는 새벽에 집을 나서 밤늦게 퇴근하는 모습이다. 노동시간단축은 건설노동자들의 가장 큰 염원이었다. 현장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설노조 강원전기원지부는 그해 화천군에 있는 2개의 한전 협력업체를 상대로 교섭을 벌였다.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했다. 건설노조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이후 소속 전기원 노동자들의 하루 근무시간이 3시간 가량 줄었다.

“출근이 한 시간 늦춰지고, 퇴근이 두 시간 빨라지니 삶이 달라지더라고요. 일체의 임금저하도 없었고, 잔업이나 야간근무는 한달에 1~2시간에 불과했죠.”

해당업체 전기원이자 노조 대표를 맡고 있는 엄인수 지부장의 얘기다. 지부에는 강원지역 배전업체 30곳 중 15곳이 속해 있다.

엄 지부장은 “이후 6년 동안 이 지역 전기원들의 일일 근무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굳어진 상황”이라며 “최근 들어 인근의 홍천·인제에 있는 배전업체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노동시간단축이 건설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은 지난 2010년 7월부터 전국의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일제히 하루 8시간 근무에 돌입하면서부터다. 이후 하루 8시간 노동은 지역과 하는 일을 막론하고 건설노동자들의 공통된 요구사항이 됐다. 하루 8시간 노동은 토목 부문에도 확산되고 있다. 건설노조 광주전남건설지부는 최근 단체협상을 통해 하루 8시간 노동을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영철 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조직력이 강한 광주나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토목 분야에서도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한 합의가 나오고 있다”며 “일부 지역에선 조합원들이 공사 현장별로 팀을 구성해 자체적으로 교섭에 나서는 등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임금지급 기한 못 박아 체불 방지

적정 노동에 대한 전제조건은 일에 대한 대가가 제때 지급되는 것이다. 건설현장은 악성 체불임금의 온상지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지난 2010년 9월 말부터 약 한 달간 건설사 1천368곳을 대상으로 임금지급 실태를 조사한 결과 410곳(30%)에서 임금이 체불되고 있었다. 건설노조가 지난해 7월부터 두 달간 조합원 2만5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신고된 체불임금규모만 126억원이었다.

건설노조는 체불임금 문제를 잡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최근 노조 산하 대구경북건설지부(지부장 이길우)는 파업까지 감행한 끝에 사측으로부터 체불임금 근절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다. 건설회사들은 이 지역 건설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익월 15일까지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건설노동자들이 임금체불에 시달린 것은 원청과 하도급 업체 사이의 핑퐁 게임 때문이었다.

원청 업체는 공정거래법으로 제한하고 있는 하도급금 대금지급 기한(60일)을 꽉 채워 대금을 지급하기 일쑤였고, 하청업체에선 이를 감안해 임금을 늦춰 지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결국 임금이 체불돼도 서로 간의 책임 공방에 시간만 지연되곤 했다.

노사는 이번 합의를 통해 원청업체의 하도급금 대금지급 기한을 10일 이내로 하고, 이후 5일 이내 건설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길우 지부장은 “지역 차원에서 노사 합의로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지급 기한을 못 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건설현장에 만연된 유보임금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재 예방 작업중지권에서 현장조사권까지

열악했던 노동시간과 임금문제 해결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건설노동자의 안전문제였다. 건설현장에서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 건설노동자들의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1차적으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 대구경북건설지부는 최근 이 지역 16개 건설업체와 월 2시간 조합원에 대한 안전보건 교육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노사 양측은 지부에 작업중지권도 부여하기로 합의했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거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시키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자동차공장 노조 등에 작업중지권이 부여된 적은 있지만 건설현장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지부는 이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발생시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지부는 재해사고가 발생할 경우 직접 재해사실을 조사할 수 있는 현장조사권까지 얻었다. 그동안 건설현장에서 재해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측의 통제로 노조의 현장 출입이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확한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이 여의치 않았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건설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사법경찰처럼 산업재해에 대해 개입하고 조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설명했다.

성과 있으나 개별교섭 한계 분명

올해 일부 지역에선 노조의 요구에 따라 주휴수당이 지급된다. 지역민 우선 채용 방식이 적용되는 곳도 있다. 화장실·식당 등 위생시설에 대한 요구도 꾸준히 반영돼 청결해진 현장도 늘고 있다. 최근 한 노조는 취업하고 6개월 뒤 회사비용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기로 했다. 울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분회는 지난달 1일부터 사측에 노동시간 단축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대전건설기계지부 세종지회도 지난 22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 돌입을 선포했다. 건설노조는 일부 지역에서의 성과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하루 8시간 노동이나 체불방지 합의가 확산될 경우 건설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개별교섭과 대정부 투쟁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기계 노동자가 표준계약서에 목매는 까닭


서류 한 장으로 적정노동·체불방지·산재보상 등 양질의 노동환경을 보장받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건설기계임대차표준계약서(표준계약서)를 '무기'로 현장을 누비고 있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09년부터 불공정한 건설기계임대차계약을 방지하기 위해 규격을 갖춘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여기엔 △1일 가동시간 △임금지불에 대한 사안 △사고발생시 처리 기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6개 항목이 담겨있다.

충북 진천에서 굴삭기를 모는 김응준(55)씨는 표준계약서를 쓰고 난 뒤 가장 좋은 점으로 현장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이 보장되고 있는 것을 꼽았다.

“과거엔 초과노동에 대한 기준이 없으니 대가없는 잔업을 시켜도 참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이제는 시간이 되면 퇴근해요. 연장근무를 하면 당연히 수당도 나오고요.”

여기에 임금지급 경위와 안전사고 발생시 처리 방안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어, 임금체불과 산재사고에 대한 걱정이 줄었다.

하지만 표준계약서는 권장사항이다. 업체로서는 비용 증가나 작업지시에 대한 제약이 따르다 보니 좋아할 리가 없다. 건설사로부터 서명을 이끌어 내는 것은 노조의 투쟁이다. 김씨가 속해 있는 충북건설기계지부는 조합원들이 시공사와 계약을 맺을 때마다 따라가 표준계약서 체결을 요구한다. 건설노조는 전체 건설기계 조합원 30% 안팎이 표준계약서를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김근주 노조 건설기계분과위원장은 “대다수의 건설사가 표준계약서 체결을 꺼리는데, 특히 공공 공사일 경우 더 심하다”며 “정부는 불공정한 계약관행을 없애기 위해서 반드시 표준계약서 체결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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