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통상임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는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통상임금을 걸고 넘어졌다. 방하남 장관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대법원 판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사용자들과 정부가 기를 쓰고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을 막으려고 하지만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회사는 주간 8시간에 대해서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고 잔업·특근·야간근로에 대해서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사용자들 스스로도 잔업·특근·야간근로 등 시간외수당을 싸게 지불할 목적으로 정기상여금 제도를 유지한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당연하게 그 금액과 상관없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아 발생한 체불임금을 받아야 한다. 이는 경제적 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그런데 현재 노동운동이 통상임금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통상임금 쟁점을 소송이 가능한 일부 조직노동자만의 문제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체불임금 산정액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국노총은 경총이 지난 4월 발표한 체불임금 산정액 38조원에 대해 반박하며 주 40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하고, 포괄임금제가 아니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5인 이상 사업장을 추려 실제 노동부 통계에서 추계되는 초과근로급여를 기준으로 체불임금 3년치를 추정해 5조7천억원이라고 밝혔다. 정액급여 외 모든 수당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가정한 후 이를 평균 초과근로시간에 곱해 액수를 산정한 경총보다는 한국노총의 추정치가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경총은 통상임금 판결이 기업 경영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이런 과장된 액수를 제시했을 것이다. 파업 때마다 국가경제 피해 운운하는 경총이니 또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체불액이 얼마 안 된다고 반박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왜냐면 한국노총식 비판이라면 현재 국가적 쟁점이 되고 있는 체불임금 쟁점은 1천770만 노동자 중 23%에 해당하는 414만명에게만 유효하다. 이 중에서 장기간에 걸친 소송과 비용, 노조가 사측의 압박을 막아 낼 수 있는 그야말로 수십만 정도의 특권적 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논란은 조직노동자의 특권적 소송 쟁점이 아니라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체불임금 전체 문제로 확장돼야만 한다. 중소 사업장 노동자·비정규 노동자, 심지어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정규직 노동자 역시 현실에서는 체불성 임금이 엄청나게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민주노총 서울남부 전략조직화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디지털단지 노동자 대부분은 하루 1시간 이상 무료노동을 하고 있다. 30분 먼저 일찍 출근해서 30분 늦게 퇴근하는 것이다. 이때 1시간은 초과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단체협약으로 근로시간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한다고 가정하면 1년에 30조원가량의 무료노동이 이뤄진 셈이다. 3년이면 90조원이다. 경총이 계산한 체불임금보다도 훨씬 크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는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190만명에 달한다. 정확한 추계는 불가능하지만 대략 이들 노동자들이 법정 최저임금을 받았다면 미지급 임금 총액은 연 4천억원 규모다. 3년이면 1조2천억원이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제조업 기업들은 대부분 다양한 형태로 비정규 노동자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에서만 약 100만명이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일해 동일임금을 받았다고 가정해도 그 액수가 수조원 규모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통상임금 소송까지 진행한다면 액수는 더욱 커진다. 사무직군에서 다양하게 이뤄지는 초과근로수당 미지급액도 만만찮은 액수다. 중소업체 사무직은 물론 대기업 사무직도 불법성 초과근로수당 미지급이 관행처럼 돼 있다.

이 모두를 합하면 한국의 체불임금 규모는 얼마나 될까. 경총이 통상임금 소송으로 나라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엄살 부리며 이야기한 38조원보다 몇 배는 클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체불임금 실체이고, 통상임금 소송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다.

통상임금 소송 쟁점으로 불거진 임금체계 문제를 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켜야 한다. 이 기회에 '떼인 임금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한국의 비정상적 임금체계와 각종 미지급 임금실태에 대해 해법을 만들어 보자. 지금 노동운동이 주장해야 할 것은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노조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발하는 일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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