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필(43·사진) 금융노조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은 요즘 대표이사실 앞 농성장으로 출근한다. 지부는 피시오프(PC-off)제 실시와 주 60시간 노동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피시오프제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일정한 시간이 되면 강제로 피시를 꺼 업무를 중단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금융노조와 금융사용자협의회가 산별중앙교섭에서 타결한 내용이다. 틀은 만들어졌는데 지부에서 협상이 안 돼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렇게 협상으로 보낸 세월이 6개월이다. 현재 금융노조 36개 지부 가운데 2012년 단체협약(지부보충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곳은 한국기업데이터지부를 포함해 단 두 곳뿐이다.

주 60시간 노동 개선 요구도 이해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에 연장근무를 최대 12시간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지부의 주장대로라면 회사는 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기업데이터 본사에서 나흘째 농성 중인 윤주필 위원장을 만나 사정을 들어봤다.

“회사 얘기도 그렇고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저녁식사 시간을 빼고 주당 근무시간이 60시간 이상입니다. 연장근무와 심야근무까지 20시간을 더한다는 얘기죠. 5일 내내 연장근로 4시간을 추가로 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훨씬 더 길죠. 직원들은 6개월 동안 매일 밤 10시가 아니라 11시30분 정도에 퇴근합니다.”

이렇게 6개월 동안 일이 몰리는 이유는 회사 업종과 관련돼 있다. 기업데이터는 정부가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05년 설립한 기업 신용평가기관이다. 360만개에 달하는 기업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면서 기업정보 조회서비스나 거래처 부실관리용 조기경보서비스 같은 신용정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정부가 중소기업 정책금융을 지원할 때 신청기업이 중소기업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일도 한다. 이런 일이 2~3월부터 7~8월 사이에 몰린다.

협상 과정에서 지부가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수기 6개월 동안에는 72일 동안 연장근무를 하겠다는 협상안을 낸 쪽도 지부다. 예컨대 1주일에 3일간 연장근무를 하겠다는 것이다. 1주일에 3일, 월 12일을 6개월로 치면 72일이다.

그런데 회사의 생각은 달랐다. 윤 위원장은 “회사가 ‘노사의 갭이 너무 크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장에 따르면 회사가 제시한 안은 사실상 ‘365일 PC온(on)’이나 다름없었다.

회사 인사부서가 작성한 방안에 따르면 사측은 영업일 220일 중 본사는 156일, (평가)지사는 72일을 PC오프 예외로 정했다. 게다가 지사에는 30일을 예외로 뒀다. 부서에서 불가피한 경우 대표이사 재량으로 10일을 추가 예외로 PC오프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영업일의 절반 이상을 예외로 하겠다는 뜻이다. 지부가 농성에 들어간 뒤 한때 본사 92일, 지사 77일을 PC오프 평가에서 제외한다는 진전된 안이 나오기도 했다.

“대표이사와 협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실무 이사진으로 다 미루니까. 미팅은 가끔 하는데 협상만 들어가면 나오지를 않아요. 지난해 한 번 나왔는데 인사말만 하고 회의장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죠.”

실무협상에서 진전된 안이 나오더라도 대표이사에게 가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윤 위원장은 특히 "장시간 노동이 국책 신용평가의 질 하락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1월 공공기관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한국기업데이터의 주요 업무를 보면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 윤 위원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청을 중심으로 11조원의 정책자금이 나갔는데, 우수한 품질의 정보를 제공하려면 고급인력에 투자하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이런 노동시간을 가지고 무슨 국책 평가기관으로서 사명감을 가질 것이며 제대로 업무효율이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설립 초기에 450명이던 인력이 250여명으로 줄고, 직원들이 6년 동안 임금삭감과 동결로 희생을 감내했는데도 경영진은 기관의 발전전망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새 경제민주화가 화두잖아요. 핵심은 서민·중소기업을 살리는 건데, 한국기업데이터의 역할이 바로 그겁니다. 국회나 정부도 기업데이터를 경제민주화의 인프라로 보고 있어요. 경영진이 조직을 위한 열정과 서민·중소기업을 위해 열정을 태워야 합니다. 지부의 투쟁은 경영진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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