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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4년 만의 자동차 조립도 ‘뚝딱’, 기적의 자동차 만들기쌍용차 해고자들 ‘H-20000’ 차량 조립 시작
▲ 쌍용차 해고자들이 12일 용인시의 한 공장에서 자동차의 엔진 부분을 조립하고 있다. 이날 조립을 시작한 자동차는 다음달 7일 시청광장에서 공개된다. 정기훈 기자

익숙한 솜씨로 4개의 바퀴를 프레임(뼈대)에 붙였다. 이어 육중한 2천900cc 디젤엔진과 변속기를 프레임 앞부분에 올렸다. 표정은 상기됐다. 그새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4년 만의 자동차 조립. 어색할 법도 하건만 그들은 역시 숙련된 노동자들이었다.

“수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몇 년을 안 하다가도 물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잖아요. 자동차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네요. 처음엔 잘 안 되면 어쩌나 했는데. 감각적으로 되는데요?”

쌍용자동차에서 16년을 일하고 정리해고된 윤충렬(45)씨는 “이래서 노동은 숙련이 중요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연대의 마음 담은 부품 2만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기적의 자동차 만들기’에 나섰다. 12일 오전 10시20분께. 해고자 20여명이 경기도 용인의 한 공업사에 모였다. 이들은 2009년 해고된 뒤 집회·농성현장에서 입었던 등산복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피켓시위 대신 공구를 집어 들었다.

해고자와 시민이 함께 만드는 자동차 'H-20000'을 처음으로 조립하는 날. 작업장에는 차체·프레임·엔진변속기·각종 내외장품 등 부품이 마련돼 있었다. 30년 경력의 정비달인 문기주(52)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이 컴프레서로 프레임과 엔진·변속기의 기름때를 제거했다. 네댓 명의 해고자들이 프레임에 바퀴를 끼우는 것으로 'H-20000'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2만여개의 부품을 모아 자동차를 만드는 'H-20000 프로젝트'. 이번 프로젝트는 해고자들의 복직과 쌍용차 국정조사를 염원하면서 ‘함께 살자 희망지킴이’가 기획했다. H에는 마음(Heart)과 사다리의 뜻을 담았다. 연대의 마음을 모아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다리를 놓자는 것이다.

해고자들이 조립하는 자동차는 코란도 밴이다. 무쏘 등과 함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명가인 쌍용차의 전성기를 이끈 차종이다. 해고자들은 ‘상태가 좋지 않은’ 중고차를 사들여 완벽하게 분해했다. 낡은 부품을 새 것으로 교환한 뒤 다시 조립할 계획이다.

▲ 조립을 시작하기 앞서 해고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실력 녹슬지 않아 … 일할 수 있다”

4년 동안 공장을 떠나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그들은 노동자였다. 컨베이어벨트로 돌아가는 공장에 비해 공업사의 작업장은 좁다. 장비를 포함한 작업환경도 평택의 공장과 비교할 순 없다. 공장에서는 맨 끝에 하는 바퀴 끼우기를 맨 처음에 한 것도 컨베이어벨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는 게 그들의 마음이다.

해고자들이 만드는 코란도는 무쏘와 함께 쌍용차의 자존심이었다. 한때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은 수개월을 기다려야 차량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 차량이 단종된 2005년 이후 쌍용차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급기야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해고되기 전 코란도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윤충렬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무급휴직을 했다가 복직한 동료들이 현장에 배치되자마자 바로 작업에 투입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일하는 게 너무 좋다’고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 아니겠어요?”

쌍용차에서 14년 넘게 일하면서 무쏘를 가장 많이 만들었다는 김대용(43)씨.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그에게 다시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김씨는 “무쏘와 코란도는 겉모양만 다를 뿐 프레임과 엔진은 똑같다”며 “그때의 자동차를 다시 만드는 것”이라고 감격했다.

엔진과 변속기가 프레임에 올라가자 정비작업이 시작됐다. 자동차 조립작업의 ‘수장’을 맡은 문기주 정비지회장은 “정비작업은 자동차의 모든 것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못하는 게 없다”며 웃었다.

문 지회장은 엔진의 헤드(머리) 부분을 뜯어 피스톤 등 주요 부품에 기름칠을 하고 닦고 조였다. 마지막으로 헤드셋을 씌워 엔진정비·조립을 끝냈다.

“세계 유일의 자동차”…다음달 7일 공개

이제 남은 작업은 차체에 유리창과 사이드미러·오디오 등을 부착하는 의장작업, 차체와 프레임을 합치는 ‘바디 마운팅’ 작업이다.

조립된 자동차는 미술가들의 외부디자인을 거쳐 아트 카(Art Car)로 탈바꿈한다. 우리나라에서, 세계에서 유일한 자동차가 되는 셈이다.

함께 살자 희망지킴이는 다음달 7일 서울광장에서 모터쇼를 열고 완성된 차를 공개한다. 차량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이나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노력한 단체나 개인을 대상으로 사연을 공모해 최종 선정자에게 전달된다.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은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동차를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2만명 마음 모으는 'H-20000 프로젝트'

‘함께살자 희망지킴이’가 H-20000을 다음달 7일 공개하기로 한 것은 2009년 이날이 법적으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시작된 날이기 때문이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여야협의체 결과가 이달 말께 나오는 데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원내대표 교체로 국정조사 불씨가 살아날 수 있는 시기라는 점도 고려됐다.

희망지킴이측은 2만개의 부품을 뜻하는 시민 2만명의 후원으로 중고차를 구매한 뒤 정비하고 조립할 계획이다. 흩어진 연대의 마음을 모아 정치권에 국정조사를 압박하고 해고자들을 공장으로 돌려 보내자는 취지다. 시민들의 후원금은 H-20000 조립과 장기투쟁 사업장 지원에 쓰여질 예정이다. 후원은 한 사람당 10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박래군 희망지킴이 대표는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해고자복직을 위해 노동자와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H-20000 프로젝트는 홈페이지(hope.jinbo.net)·이메일(hopegardians@gmail.com)·페이스북(gardians.hope)·트위터(@Hope_Gardians)에서 참여할 수 있다.

김학태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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