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를 벌이다 연행된 여성에게 속옷 탈의를 강요한 경찰 조치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9일 김아무개(31)씨 등 여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가 김씨 등에게 각각 1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 등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유치장 입감 과정에서 자해·자살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브래지어를 탈의하도록 한 내규를 근거로 김씨 등에게 브래지어를 벗도록 요구했다.

이들은 결국 브래지어를 벗은 채 유치장에서 지냈다. 이어 "공권력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아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배상소송에 나섰다. 1·2심 재판부는 "브래지어 탈의 요구는 피해자들의 명예나 수치심을 포함한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해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며 "자살 징후 포착 여부나 본인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경찰 조치는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한 방법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위법하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인권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인권운동사랑방과 천주교인권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조치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경찰이 재량권을 남용해 자의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한 것임을 법원이 최종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그간 경찰이 관행적으로 진행한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근절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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