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지금은 소강국면이지만 지난 3월5일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하루하루 긴장은 악화되며 전쟁이 현실로 나타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다. 6·25 전쟁의 비극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세대가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이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쟁만큼은 막아 내고 평화를 수호해야 한다는 건 국민적 합의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오면서 생존권을 향한 70여곳의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사회적 관심 밖으로 내밀렸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복직 철탑농성도, 현대자동차에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송전탑에 오른 지 6개월을 넘긴 최병승과 천의봉의 요구도 파묻혀 잊힌 사건이 돼 가고 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장 큰 희생양은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이번 북미와 남북 간 전쟁위기는 북한의 핵실험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드리우게 하는 것으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핵실험의 사유를 밝히면서 미국을 지목했다. 북미 간 대화를 통해 약속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특유의 벼랑 끝 전술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건 쉽게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미국은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승계한 북한의 젊은 지도자를 시험에 들게 했다. 이번 키리졸브 훈련은 통상적인 한미 합동훈련을 넘어섰다. 미국은 B-52·B-2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사이언, F22 스텔스 전투기 등 전략무기들을 동원해 북한을 위협했다. 북한은 실제 전시체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면서 극단으로 치달았다. 외국의 언론들은 한반도 전쟁을 기정사실로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임에도 실제 전쟁이 터지면 미국 땅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일거에 화약고가 터져 죽어 나가는 것은 남북한의 국민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현대전은 5분 만에 양측의 화력 대부분을 쏟아붓는다. 지상에는 살아남는 생명체가 없을 정도로 60년 남북 대치상태의 화력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남북 전쟁이 현실화하면 2천킬로미터 이내 기존 단거리 미사일로도 정밀타격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남한에는 북한이 개발한 핵폭탄보다 10배나 무서운 핵발전소가 20여기가 가동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로 핵발전소를 겨냥한다면 남한은 순식간에 핵전쟁터가 된다. 특히 울산은 고리와 월성 원전 반경 30킬로미터 이내라서 핵발전소가 폭파되면 72만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망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다. 게다가 액체 유독물질도 전국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기에 울산은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1순위에 올라 있다. 따라서 전쟁만큼은 울산노동자들이 가장 앞장서 반대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은 대화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논객들의 선동에 흔들리지 말고 실체도 불분명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대체해야 한다. 그리고 직접 대화에 나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당사국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북미 대결에서 공정성을 갖고 전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휴전협정을 남북 평화협정으로 체결해야 한다. 남북 대결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전쟁을 방지하고 국민보호에 나서는 것이 본연의 임무다.

10년 동안 공들인 남북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잠정폐쇄됐다.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이 물거품이 되고 남과 북의 전쟁 위기는 당사자들 손에 떨어졌다. 개성공단 폐쇄로 북한에는 5만4천여명이, 남한에도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의 GM 회장은 한반도 전쟁 운운하며 한국지엠 철수를 천명했다. 완성차 1만7천여명과 납품업체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누가 가장 손해인지 확인되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미국의 키리졸브 훈련으로 남한은 아무것도 얻는 게 없이 전쟁의 광풍에만 휩싸였고 개성공단 폐쇄라는 경제적 손실만 입었다. 북한은 체제 결속과 강화를 얻고 어차피 굶기는 마찬가지이기에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1·2차에서도 별다른 제재조치를 못했기에 이번에 3차를 한 것이고 미국이 대화로 풀지 않으면 4차도 할 것이다. 이 대결에서 어부지리는 일본이 얻는다. 일본이 무장에 나설 빌미를 줬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산 무기를 사들인다면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한국의 신무기 수입과 함께 커다란 무기시장을 얻게 된다.

남한의 극소수 수구세력과 재벌들은 전쟁 분위기를 이용해 돈벌이에 이롭겠지만 대다수 노동자와 서민의 민주적 권리는 전쟁 앞에 무너져 내리고 빼앗긴다. 북미의 대결은 남한만 무조건 손해 보고 노동자·민중의 희생을 불러온다. 노동자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수호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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