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망자는 ‘고작’ 3명이다. 생명은 고귀한 것이고, 이는 보스턴 희생자 3명에게도 해당된다. 하지만 죽은 숫자의 ‘터무니없는 적음’에 비해 해당국인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언론이 쏟아 낸 보도건수는 지나치게 많았다. 보스턴에서 테러가 일어나던 무렵 아프가니스탄에서는 CIA가 관여한 폭격작전 때문에 수십 명의 어린이가 떼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매일 비슷한 숫자의 민간인이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잘못된 작전으로 죽어 나간다. 하지만 이 소식을 호들갑 떨며 대문짝만 하게 보도하는 매체는 없다. 목숨값에서 미국인 3명의 값어치는 제3세계 국민 수천 수만명의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국적과 인종에 따라 인권의 가치가 다른 것이다.

지난 24일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건물 붕괴로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수만 350명에 이른다. 부상자와 실종자가 각각 1천명을 넘어섰다. 의류공장 5개가 입주해 있던 건물의 주인은 종적을 감춘 상태다. 이들 의류공장은 서구 유명브랜드의 하청회사들이다. 미국인 3명이 죽은 보스턴 사건에 보여 준 광적인 수준과 비교할 때 봉제노동자 350명이 떼죽음을 당한 방글라데시 사건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너무나 차분하다. 붕괴 하루 전 조사관들이 건물의 균열을 발견하고 모든 노동자들을 대피시키라고 했지만, 건물 소유주와 공장 관리자들은 이를 무시했다.

하루 6천명 일터에서 죽어

4월28일 ‘일터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세계 기념일’을 맞아 발표한 메시지에서 국제노동기구(ILO)의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은 “매년 234만명이 일과 관련한 사고와 질병으로 죽는다”고 밝혔다. 234만명을 365일로 나누면 하루 6천411명꼴이다. 이에 더해 진폐증·근골격계질환·정신병 등 일 때문에 생긴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은 한 해 1억6천만명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석면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를 10만7천명, 화학물질로 인한 연간 사망자를 44만명으로 추정한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은 것이다. 이 때문에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ITUC) 사무총장은 산업재해를 “대학살”로 규정했다. 하지만 세계 어느 언론도 (보스턴 테러 희생자수의 2천배가 넘는) 하루 6천명 넘게 죽어 가는 ‘일터의 테러’를 양과 질 모두에서 만족스럽게 보도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일로 인해 죽은 사람이 2천114명, 다친 사람이 8만4천662명에 달했다. 업무상질병 환자 6천516명을 포함하면 4일 이상 요양을 요하는 재해재가 9만3천292명 발생했다. 일 때문에 하루에 6명이 죽고, 232명이 다친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일 때문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과연 이뿐일까. 누구는 정부 통계치의 2배를, 다른 누구는 5배를 곱해야 산업재해자의 실체에 가까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 통계에는 자동차 사고로 처리되거나, 산업재해에 대한 무지와 신고에 따른 불이익을 이유로 쉬쉬하며 넘어가는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산업재해자, 특히 사망자수를 의도적으로 줄이려 애쓰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동자에 대한 전쟁과 테러

4월28일을 일터에서 죽거나 다친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International Workers' Memorial Day)'로 만드는 데에는 캐나다의회와 노조들이 앞장섰다. 캐나다의회는 1914년 노동자보상법을 통과시켰는데, 그날이 4월28일이었다. 이를 기념해 1984년 캐나다공공노조(CUPE)가 추모의 날 행사를 했고, 85년 캐나다노총(CLC)이 전국 규모의 연례행사로 발전시켰다. 91년 ‘일터에서 죽거나 다친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날’ 법률이 캐나다의회를 통과했고,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돼 2001년부터는 ILO가 ‘일터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세계 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조기를 게양하고, 검은 리본이나 완장을 차고, 묵념과 촛불행사를 연다.

올 들어 대림산업·대우조선해양·삼성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연일 산업재해사고가 터져 나오고 있다. 덮으려 애쓰다 밖으로 샌 것만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니, 실제 사정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대기업 사정이 이런데 중소·영세업체의 사정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기업 살리는 것에만 관심 있는 정부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방관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 해 수천명, 한국전쟁 이후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어 나갔다. 노동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과 테러의 연속이었고, 이를 발판으로 한국경제가 오늘의 수준에 이르렀다. 자본과 권력의 합작품인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극은 언제나 멈춰질 것인가. ‘전쟁과 테러’ 종식을 위한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이 절박하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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