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된 지는 꽤 오래됐다. 사내하청에 관한 불법파견 판정이 난 지 이미 7년이 넘었고, 지난주에는 기아차 광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분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도, 노동자들의 몸을 내던진 요구에도, 시민사회의 지탄에도 현대·기아차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문제에 정몽구 회장은 일언반구도 없다.

현대·기아차는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까지 법과 여론을 무시하는 것일까. 아마도 정몽구 회장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빌리자면 그는 “현대차 회장이 곧 국가경제다”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사실 그의 배짱은 물질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57개 회사로 이뤄져 있고, 해외 법인은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계열사들을 가지고 있다. 2012년 그룹 매출액은 약 200조원에 순이익은 20조원 가까이 된다. 현대차그룹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의 15%에 육박하고, 현대차가 지출하는 비용은 한국 중앙정부 지출의 60% 규모다.

더 문제인 것은 그 규모보다도 현대차그룹의 산업적 장악력이다. 현대차 그룹은 완성차 부분을 주력으로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 주요 산업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을 나눠보면 완성차 산업의 현대차와 기아차, 자동차 부품산업의 현대모비스, 철강 산업의 현대제철, 건설 산업의 현대건설, 금융 산업의 현대캐피탈, 물류산업의 현대글로비스 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산업 흐름을 주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몇 가지 예를 보자.

현대모비스는 한국 자동차 부품사의 독식구조를 만든 기업이다. 매출액 31조원에 4조원의 순익을 내는 모비스는 현대기아차의 A/S 부품 조달을 독점하며 중소 부품사들에게 이른바 통행세를 걷는 것은 물론 모듈사업 상당부분을 독식해 현대·기아차의 1차 벤더 상당수를 2차 벤더로 내려 앉혔다. 또한 공장 상당수를 정규직 없는 비정규직 공장으로 운영하며 산업 내 노동시장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물류를 독점하고 있는 글로비스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씨의 현금창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2조원 매출에 5천억원의 순익을 남기는 글로비스에는 700여명의 종사자만 존재하는데 육상화물운송 시장의 전근대적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이용해 화물차 기사 전체를 간접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물노동자들의 유일한 노조인 화물연대를 깨는 선봉대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물량배정시 화물연대 조합원을 일체 배제하는 것은 물론 화물연대 파업시에도 자신의 차를 동원해 파업 파괴에 앞장선다.

현대차그룹의 금융부분은 더욱 놀랍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자신의 막대한 현금을 이용해 매년 이자 수익만 7천억원을 벌어들인다. 금융계열사인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는 매출액 6조원에, 6천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 금융수익으로 벌어들이는 돈만 2조원에 육박한다. 한국에서 가장 큰 금융그룹인 KB국민은행그룹의 순이익이 2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그룹은 그룹 안에 한국에서 가장 큰 금융기업을 품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의 이런 금융적 확장은 사실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한데, 2008년 GM이 파산할 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바로 금융사업 부분이었던 것을 떠올려 봐도 그러하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왕국이 이러하다. 법원의 판결 따위 무시하면 그만이고, 자신이 없으면 국가경제도 없다는 그의 태도는 현대차그룹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배경이다. 여러 언론과 보고서에서 다뤘듯이 사내하청 직접고용에 따른 인건비 증가분은 현대차그룹의 규모를 봤을 때 사실 새 발의 피만큼도 되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현대·기아차를 이렇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이래선 법도, 자유도, 노동도 없다. 정부는 정몽구 회장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가장 높은 수위로 처벌해야 하고, 더 나아가 법과 민주주의가 재벌 그룹 안에서도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재벌들을 통제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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