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월요병도 치유해준다는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슈퍼갑 비정규직 미스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드라마는 매회 첫 장면에서 “어느덧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됐다”는 오프닝 멘트를 펼친다. 그만큼 살기 팍팍한 이 사회에서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문제는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덜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월부터 이어진 한반도 긴장 정세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르다. 통일업무를 전담하는 대외협력본부이다 보니 더욱 그렇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질문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남북경제협력을 추진하는 회사의 노조들로부터는 ‘개성공단이 완전히 폐쇄되는 것이냐’는 질문이, 조선직업총동맹과의 연대사업 경험이 있는 조직들로부터는 ‘직총으로부터 소식은 없는가’ ‘민간급 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그 외에도 ‘정말 전쟁이 날 것 같으냐’ 등의 질문이 빗발친다. 심지어 ‘주식은 언제 팔아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다.

모두 위기감 또는 공포감의 표현이다. 사는 게 전쟁이고, 남북 간 갈등 역시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웬만한 상황에서는 꿈쩍도 않던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그러한 이들이 전쟁의 위기와 공포를 직접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현 위기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북은 이미 인공위성과 핵실험을 성공했다. 이 정도의 협상카드를 놓고 에너지 지원 따위의 합의를 목적으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각종의 성명을 통해 발표됐듯 북은 명확히 북미관계 정상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남북관계 정상화는 그 다음의 일이다.

물론 해결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미일 순방 과정에서 미사일방어망(MD) 축소를 언급하는가 하면, 북과의 대화의사를 몇 차례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특히 MD의 경우 미국의 가장 중요한 미래 군사전략 중 하나이다. 물론 케리 장관이 ‘확대 해석 경계’ 및 ‘북의 비핵화 의지’를 배경에 깔고 있기는 하나, 이러한 공식적 언급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 현재의 국면은 얼마간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북이 목표로 두고 있는 북미관계 정상화 및 평화협정 체결은 남북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킴과 동시에 미국의 대아시아전략이 대대적으로 수정돼야 함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아시아전략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의 진출을 막아 내는 데 있다. 여기서 한미일 대 북의 대립관계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내용적으로 결속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향후 관계 정상화 및 평화협정 체결을 목적에 둔 북미 간 협상이 재개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미일 군사동맹의 결속력과 MD 및 핵우산정책의 후퇴를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현 전쟁위기의 해결, 즉 대화와 협상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전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불시’라는 단어가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 ‘전쟁’이다. 물론 약간의 기류 변화가 포착되기는 하나, 여전히 한반도는 전쟁 위기라는 칼끝에 서 있다.

더구나 한국 정부는 대화 중개자로서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개성공단은 달러박스’라는 발언을 비롯해 어버이연합 등 각종 보수단체의 적대행위를 방치해 남북관계를 더욱 벼랑 끝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전쟁 전야’다.

평화는 생존하는 모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밥과 옷과 집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듯, 평화가 있어야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 반면 평화의 파괴는 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노동자이다.

때문에 평화와 통일은 남 얘기가 아닌, 바로 우리 노동자의 가장 절실한 과제다. 우리 노동자 스스로가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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