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들의 투자를 주문하고 나섰다. 상장기업들의 현금성 자산만 52조원 수준인데, 이 가운데 10%만 투자해도 정부가 추진하는 추경의 세출 확대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며, 정부도 민간기업 투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재벌 대기업에 대한 투자 요구는 매년 나오는 정부 경제정책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까지 재벌 대기업들은 정부의 투자 요구가 나오면 이에 화답해 투자 계획과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재벌 대기업의 투자가 국민경제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정부는 매번 재벌 대기업의 투자를 이야기하지만 재벌대기업 투자가 늘어서 무엇이 좋아진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재벌 대기업이 언론에 밝히는 투자액은 보통 연구개발비와 설비투자비를 합한 액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설비투자로 23조원, 연구개발비로 12조원을 지출했다. 약 35조원을 투자한 것이다. 현대차는 설비투자로 3조원, 연구개발비로 2조원을 지출해 합계 약 5조원을 투자했다. 이 밖에 포스코는 7조원, LG전자는 5조원, 기아차는 3조원, GS칼텍스는 1조원, 현대중공업은 1조원을 투자로 지출했다. 30대 재벌의 설비 및 연구개발 투자 총액은 약 6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정부가 재벌들의 투자를 촉구할 때 국민경제에 미치는 첫 번째 효과가 고용 증가다. 하지만 익히 알려져 있듯이 재벌 대기업의 투자는 고용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투자가 늘어 고용이 줄어드는 경우도 다반사다. 자동화 설비의 증가 혹은 노동 강도를 높이는 투자로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삼성전자는 지난해 설비투자로만 23조원을 지출했지만, 지출 대부분은 새로운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와 LCD사업의 라인 성능 개선에 이용됐다. 그 결과 2011년 10만2천명이던 종사자가 2012년 9만명으로 줄었다. 연초 투자계획을 밝히며 신규채용을 이야기했지만 실제는 신규채용 규모 이상으로 인력 조정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7조원을 투자한 포스코는 종사자 규모에 변동이 없었고, 5조원을 투자한 LG전자는 1천여명이 증가했다. 5조원을 투자한 현대차는 종사자가 2천여명 증가했지만 실제는 고용 규모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 판정 여파로 일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 것이었다. 불법파견 쟁점에서 비껴서있던 기아차는 3조원을 투자했지만 종사자 규모에는 변동이 없었다.

그렇다면 대기업 투자가 이들에게 납품을 하는 중소기업 고용에는 효과가 있었을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40조원을 투자했다지만 전자부품산업 중소기업 종사자 수는 지난해 오히려 2011년에 비해 2%가 줄었다. 현대기아차가 8조원을 투자한 자동차산업에서는 중소기업 종사자 수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또한 대기업 설비투자시 연관 산업인 장비제조산업 고용인원 역시 변화가 없었다.

상황이 이러할 진데 정부는 대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서민들의 경제와 상관없는 대기업 퍼주기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재벌 대기업이 국내 경제의 선순환에 기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규제다. 노동시간과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가 대표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신제품이 세계적 히트를 쳐도 국내 고용에는 전혀 기여를 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하청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로 물량이 급증할 때는 노동법을 무시한 채 잔업특근을 시행하고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이용하다 물량이 감소하면 휴업과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과 고용관계가 이렇게 유연해서는 아무리 대기업이 잘나가고 투자를 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고용률을 높이고 싶다면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노동시간과 고용의 유연성을 엄격히 규제하고, 노동법은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재벌 오너들을 처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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