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최대 노총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코사투)가 지난 3월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단체교섭·조직화 대회’를 열었다. 코사투의 19개 산별노조에서 500여명이 참가한 대회는 지난해 9월 열린 제11차 코사투 전국대의원대회의 결의에 따라 인종차별적인 임금 구조를 변혁하고, 코사투 운동을 혁신하며, 전국 수준의 새로운 임금정책과 조직화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당시 전국대의원대회는 그 실천 방향으로 전국 단일 최저임금제 도입, 산업별 중앙교섭의 법제화(mandatory), 실업자를 위한 사회보장제 확충을 제시했다.

민주화 이후 추락해온 사회경제적 조건들

노동운동 안팎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발표자로 나선 가운데 열띤 토론을 거듭한 단체교섭 대회에서 확인된 민주화 20여년의 사회경제적 성과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남아공이 민주화되기 전인 1992년 62세였던 남아공 국민의 예상수명은 2006년 50세로 추락했다. 산모사망률은 1997년 10만명당 81명에서 2005년 600명으로 늘었다. 매일 1천명이 에이즈(HIV) 관련 질환으로 숨지고 있다. 인구 4천800만의 남아공에서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는 5년 안에 55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결핵 발병률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높다. 하지만 가족 성원 중 한 명이라도 건강보험을 통해 의료비 부조를 받는 가구는 25%에 불과하다. 백인의 74%가 건강보험 혜택을 누리는 반면 흑인은 9%에 그친다. 때문에 코사투는 전 국민 건강보험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상태와 노동시장 상황도 엉망이다. 2010년 전체 노동자 90%의 수입이 월 평균 3천327랜드, 우리 돈으로 40만원에 불과했다. 코사투는 남아공 노동자의 55% 이상이 저임금 고용에 속해 있다고 본다. 실업보험기금의 적용을 받는 비율은 43%에 불과하다. 2012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85%가 주40시간 넘게 일하고, 32%만이 의료비 부조 혜택을 받는다. 31%가 유급 병가를 가지 못하고, 50%가 연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데다 33%가 유급연차휴가를 누리지 못한다. 출산휴가나 양육휴가를 누리는 비율은 43%에 그치고 35%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전체 노동인구의 9%만이 산별중앙교섭의 적용을 받으며, 전체 노동자의 임금 결정 가운데 23%만이 노조의 교섭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노동운동 안팎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코사투가 내세우는 전략은 무엇보다 조직화다. 1985년 33개 노조, 50만 조합원으로 출발했던 코사투는 지난해 21개 노조, 220만 조합원으로 성장했다. 조합비를 내는 규모는 180만에 달한다. 덕분에 남아공의 노조 조직률은 30%에 이른다. 전국대의원대회는 이러한 양적 규모의 증대와 더불어 조직 내부의 단결력 회복, 조합원의 노동계급 의식 제고, 노조 조직구조의 혁신 등 질적 수준의 향상에 더욱 노력하기로 결의했다.

노조의 대표성과 ‘사회적 거리감’의 문제

코사투 산하 연구기관인 전국노동경제발전연구소(NALEDI)가 수행한 2012년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산별노조 조합원들의 노조 가입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해고 및 부당징계로부터 보호(38%) △임금 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33%) △사회 변화(9%) △의무적 노조 가입 조항(closed shop)으로 인한 강제 가입(5%) △노조의 각종 혜택(3%) 순이었다. 조직화 전략과 관련해 코사투 사무총장 즈웰린지마 바비는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개선과 현장대의원 교육을 강조하면서, 현장의 구체적인 요구를 반영해 부당징계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하고 임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조합의 대표성과 책임성, 민주주의 문제도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이와 관련해 바비 총장은 최소 한 달에 한 번 작업장 수준에서 조합원 모임을 가져야 하며, 노조 지도부와 활동가가 노조 규약을 숙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NALEDI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코사투 조합원의 30% 이상이 어떠한 노동조합 모임이나 활동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또 하나 관심을 끈 주제는 노동운동가와 조합원 사이에, 그리고 노동조합과 노동계급 사이에 생기고 있는 ‘사회적 거리감(social distance)’의 문제다. 바비 총장은 “노조의 현장대의원 수준에서, 더 심각하게는 선출된 노조 지도부의 수준에서 기층 조합원 및 노동계급과의 물리적 거리감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고백했다. 자신을 포함해 코사투 및 산별노조의 지도부와 상근간부들이 노조로부터 받는 지나치게 많은 임금을 꼬집은 것이다.

장기간 공백상태에 있는 지도부를 뽑는 단 하루의 대의원대회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하는 우리 노동운동이다. 이 문제는 2박3일 노조 교육은 사라진 지 오래고, 1박2일 교육조차 성사시키기 힘든 노동조합의 현장활동 수준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이런 우리 노동운동의 상황에서 ‘단체교섭과 조직화’를 내건 코사투의 정책대회는 주제의 다채로움이라는 질적 측면과 더불어 나흘이라는 기간의 양적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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