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 모델과 관련해 최근 주목받은 나라는 ‘프랑스’다. 지난 1월11일 프랑스 노사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노사 간 협상이 3개월 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이른바 ‘기업의 경쟁력과 고용안정성, 임금근로자들의 경력을 위한 새로운 경제 및 사회모델’이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프랑스 노사 합의를 주요 외신기사로 다뤘다. 그런데 국내 주요 언론들은 프랑스 사례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프랑스 언론들은 찬반양론이 팽팽한 노사 합의에 대해 신중하게 보도했음에도 국내 주요 언론들은 ‘노사정 대타협’이라고 치켜세우는데 급급했다. 일부 노동단체만 합의서에 서명했음에도 이러한 점은 아예 무시됐다. 프랑스 국회의 입법 절차가 남아 있는데도 국내 주요 언론들은 ‘노동법 개정 합의’로 왜곡보도 했다. 그렇다면 프랑스 사례의 실상은 무엇일까. 합의서 핵심 내용은 이랬다.

총 24장으로 작성된 합의문에는 5개의 중요한 핵심 쟁점사항이 담겼다. 종전보다 해고절차가 완화됐다. 50명 이상 고용 기업이 10명 이상 직원을 해고할 경우 종전에는 법원과 행정기관에 고용보고계획을 제출해야 했다. 법원과 행정기관의 사전심의는 정리해고에 대한 완충지대로서 작용한 셈이다. 이번 합의를 통해 정리해고는 행정기관 승인이 있거나 노사가 합의하면 가능하게 됐다. 법원의 사전심의 절차가 삭제된 셈이다. 물론 정리해고에 대한 소송은 가능하다. 프랑스 사용자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항이 관철됐다. 또 기업이 해고 회피를 위해 임금을 삭감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이 사항은 과반수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직장 내 전환배치가 가능해졌으며, 이를 거부하면 해고사유가 된다고 명시했다. 이런 조항들은 사실상 기업측 요구를 수용해 노동유연성을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노동계의 요구사항이 관철된 것도 있다. 우선, 의료보험 적용대상이 전체 노동자로 확대됐다. 실직되더라도 1년 동안 의료보험 혜택이 종전과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했다. 단기계약직을 고용하는 기업의 경우 종전보다 부담해야 할 고용보험료가 인상된다. 실업연금을 다 쓰지 않은 채 새로 취업하더라도 종전에 남아있던 실업연금을 쓸 수 있게 했다. 직무와 관련이 없어도 모든 노동자들이 1년당 20시간의 직업훈련을 보장받는다. 기업은 직업 대표 또는 노조 대표단이 열람 가능하도록 기업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프랑스 정부와 사용자단체들은 이 합의에 일제히 환영 성명을 냈다. 하지만 노동단체들은 엇갈렸다. 최대 노동단체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와 노동자의 힘(FO)은 “노동의 불안정성을 강화하고 해고의 자유만 늘려주는 합의”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합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기업 내 노조 대표자를 뽑는 투표를 보면 CGT와 FO는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 전체 노동자의 대표성을 인정받았다. 때문에 이번 노사 합의가 ‘반쪽 합의’라는 지적과 함께 대표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노사 합의안이 검토되더라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겠다’는 박근혜 정부 입장에선 프랑스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300여개 노동·사회단체가 참여한 사회적 대토론회를 거쳐 노사 합의를 이뤄냈지만 그 성패가 불확실한 상태다. 최대 노동단체가 빠진 채 합의돼 추진동력이 상실된 채 정치적 상징성만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98년)에 이어 일자리 협약(2004년), 노사민정 합의(2009년) 등 세 차례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경제위기 해소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부분이 있지만 양극화 해소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확대,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 확산을 고려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또 일자리를 매개로 한 노사관계 안정과 사회적 대화체제 활성화도 기대만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두 번의 사회적 합의는 민주노총이 빠진 채 이뤄진 ‘반쪽 합의’였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시절 2·6 노사정 대타협에 참여했지만 이후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결의했다. 이렇듯 사회적 합의는 추상적인 선언에 그쳤을 뿐 그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았다.

즉, 대기업 사업장을 포괄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 이행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결의한 탓에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민주노총을 배제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합의도 마찬가지다. 출범 100일에 맞춰 사회적 합의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실패한 과거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 사회적 합의가 주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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