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8시, 인천 남동구 간석동 남인천 우체국에서 집배원들이 택배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화요일 아침 우체국은 세상에서 제일 바쁜 곳이다. 주말 동안 발이 묶였던 택배와 소포들이 우체국을 떠나 주인에게 전달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오전 8시 인천광역시 남동구 남인천우체국 1층 발착장. 크고 작은 택배상자와 소포꾸러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날 우편집중국을 거쳐 이곳으로 들어온 소포·택배는 1만4천여개. 남인천우체국의 집배인원이 190명이니, 집배원 한 명당 70개가 넘는 물건을 배달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같은 시각 우체국 3층 집배실에선 각종 고지서와 광고지 같은 우편물을 구분하는 손길이 바쁘다. 집배원이 우편배달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하루 업무의 절반 가량이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이다. 주소지별로 정확하게 구분해야 배달사고를 막을 수 있다. 쏟아지는 우편물을 나누는 작업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노동시간이다. 우리나라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정노조(위원장 이항구)에 따르면 업무가 집중된 수도권 우체국에서 일하는 집배원의 경우 평일 오전 1시간, 오후 3~4시간의 시간외근무를 한다. 하루 실제 근무시간이 11~12시간이나 된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은 딴 나라 얘기다.

어느 지역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노동시간 편차가 크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평균 노동시간은 대략 2천952시간에서 3천216시간으로 추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010년 연평균 노동시간이 1천749시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집배원들의 노동시간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현대자동차 생산직의 연간 근무시간(지난해 기준 2천40시간)과도 차이가 크다. 법정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집배원들은 1년에 156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쏟아지는 우편물에 하루가 훌쩍 … “집에 일찍 가고 싶어요”

“월급을 조금 덜 받더라도 일찍 퇴근하고 싶죠. 저녁밥은 식구들과 같이 먹어야 하는데…. 나이 들기 전에 취미생활도 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몸이 너무 고됩니다.”

용인수지우체국 집배원 오준철(50)씨의 말이다. 2002년 비정규직인 상시계약집배원으로 입사해 2004년 공무원으로 신분이 전환된 오씨의 출근시간은 언제나 새벽 6시50분이다. 우체국 방문고객의 소포 리스트를 점검한 뒤 담당 직원들에게 물량을 배분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업무다. 그런 뒤 우편집중국에서 넘어온 배달물을 팀별로 나눈 뒤 다시 개인별로 구분하고, 피디기로 소포와 택배를 스캔한다. 이때 고객들은 “○○일 우편물이 배송될 예정입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게 된다.

본격적인 배달업무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 택배물량이 많은 날은 출국(우체국을 떠나는) 시간이 늦어진다. 배달을 마치고 귀국(우체국에 돌아오는)을 하는 시간은 통상 오후 5시께다. 미처 배달하지 못한 우편물을 따로 분류하고, 반송함에서 수거한 우편물에 도장을 찍고, 특수실에 등기우편물을 인계하고…. 귀국 후에도 업무가 꼬리를 문다. 잔무 처리가 어느 정도 끝나면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해야 한다. 토요일 격주근무까지 하는 주는 완전히 파김치가 된다.

“요즘은 덜 바쁜 때라 저녁 9시면 퇴근하는데요. 명절 때나 연말연시와 같은 폭주기에는 자정을 넘겨 퇴근합니다. 그때는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 거죠.”

폭주기 때 오씨가 받는 월급은 세금을 제외하고 270만~280만원 수준이다. 이 중 80만원가량이 초과근무수당이다. 시간외근무가 적은 달은 당연히 급여도 줄어든다. 그래도 오씨는 “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말이다.

우정사업본부 소속 우체국은 전국 3천656곳, 집배인력은 1만6천여명이다. 공무원 신분인 정규직 집배원이 1만4천여명, 비정규직인 상시계약 집배원이 2천200여명이다. 이 밖에 개인이 운영하는 별정우체국이 별도의 집배인력을 운영한다.

우정사업본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9월 발표한 ‘현업직원 감정노동 실태 및 갈등관리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집배원의 초과근무 시간은 하루 평균 2.6시간, 월 평균 51.8시간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지역 집배원이 하루 2.4시간, 월 평균 68.5시간 초과근무를 한다. 경인지역 집배원들의 초과근무 시간은 하루 3.6시간, 월 평균 71.8시간이다.

집배원들이 초과근무로 내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업무는 폭주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집배원 시간외근무의 원인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2.1%가 “업무량이 근무시간 안에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답했다. 이어 “업무특성상 근무시간 외에 수행해야 할 일이 있다”(28.9%), “결원이 발생해도 대체인력이 없거나 부족해 일이 연장된다”(11.8%)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반면 “시간외수당을 받으려고 오래 일한다”는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 우편 자루를 들고 뛴다. 분주한 일상이다. 정기훈 기자

법원으로 간 집배원들 “일한 만큼 초과근무수당 지급하라”

그런 가운데 집배원들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최근 법정으로 번졌다. 지난달 15일 전국 7개 우체국 소속 집배원 45명이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미지급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낸 것이다. 집배원의 초과근무수당 청구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송 참가자들은 “대다수 집배원들이 하루 4~5시간의 초과근무를 하고, 토요일에도 격주로 출근해야 한다”며 “그러나 초과근무수당이 실제 일한 시간보다 적게 지급돼 소송에 나섰다”고 밝혔다.

영남지역의 한 우체국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A씨도 소송에 참여했다. 그는 2010년에 935시간 초과근무를 하고, 27일간 휴일근무를 했다. 2011년에는 1천55시간 초과근무를 하고, 21일간 휴일근무를 했다. 이러한 근무시간이 모두 반영됐다면 A씨는 같은 기간 동안 2천329만4320원의 수당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844만5천570원을 덜 받았다. A씨는 임금채권 시효에 해당하는 최근 3년간 최소 1천만원의 초과근무수당이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1천만원을 달라”고 요구하며 소송에 나섰다.

지역별로 집배인력의 노동시간 편차가 커서 체불임금 규모를 계량하기는 쉽지 않다.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인력이 1만6천여명이나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지급 수당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집배원은 국가공무원법 66조 규정에 따라 ‘현업대상자’로 분류된다. 현업대상자는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으로 집배원이나 소방관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까지 적용돼 온 안전행정부의 현업대상자 초과근무수당 지급규정이 애매하다. 해당 규정은 “현업기관 근무자나 교대근무자 등 업무성격상 초과근무가 제도화돼 있는 공무원의 시간외수당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급하라”고 정하고 있다. 정해진 예산에 맞춰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집배원들이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우윤근 민주통합당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우체국 지문인식기에 기록된 집배원들의 실제 출퇴근 시간과 시간외수당이 인정된 시간이 최대 29.1시간이나 차이가 났다. 우 의원은 “인정받지 못한 시간외근무 시간을 단가로 계산해 봤더니 많게는 월급의 10%에 달했다”며 “우체국의 얼굴이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집배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배원의 초장기 노동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고, 소방관 등 유사 현업대상자들의 초과근무수당 청구소송이 증가하자 안전행정부는 지난해 8월 현업대상자 초과근무수당 지급규정을 일부 개정했다. 개정된 내용은 “시간외근무수당이 지급되는 근무명령시간은 1일 4시간, 1개월 57시간으로 상한한다”는 것이다. 이어 휴일근무수당 지급대상 규정을 “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현업공무원으로 한정한다”고 고쳤다. 기존 규정보다 구체화된 내용이다.

하지만 개정된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우편업무가 집중되는 폭주기에 자정을 넘겨 가며 일하는 집배원들에게 온전한 급여를 지급하기 어렵다. 집배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무료봉사를 해야 할 판이다.

집배원 장시간 노동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근본적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 다름 아닌 인력충원이다.

노동시간 줄일 묘약은 인력충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취임식 직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서 우체국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했다. 이날 한 집배원이 보낸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 달라”는 희망메시지에 대해 박 대통령은 “집배원들이 고생이 많다”며 “신도시도 늘었는데 집배원은 한정된 인원으로 고생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 문제도 제가 해결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난 이달 11일 우정노조와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 인력을 충원하고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는 내용의 우정노사협의회 협정을 체결했다. 노사는 이날 △집배인력 증원 추진 △집배원 장시간 근로 대책 마련 △서비스의 안정적 제공을 위한 회계(우편·예금) 통합 또는 일반회계 지원방안 강구 △상시계약집배원 공무원화 △우편소통품질평가제도 폐지 등 5개 안건을 협의하고 단계적 개선에 합의했다. 노사는 이를 위해 안전행정부·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정원과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다.

노조는 인천 송도·세종시 등 세대수가 급증한 신도시 지역에서 인력충원이 시급하다고 보고, 이들 지역에 집중배치할 집배인력 1천명 충원을 정부에 요구했다. 아직까지 충원될 인력의 고용형태에 대한 구체적 사항은 결정된 바가 없다.

우체국 현장의 노동자들은 집배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과 우정 노사의 인력충원 합의 소식에 “숨통은 트이겠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새로 충원되는 인원은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만호 남인천우체국장은 “같이 고생하면서도 신분이나 처우에 있어 차별을 받아 온 비정규직(상시계약직) 직원들을 볼 때마다 너무 미안했다”며 “이들을 우선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오전 9시, 동료와 안전운행을 다짐한 뒤 출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상자기사 1] 우체국 주말근무는 무료 봉사?
우정사업본부 ‘토요일 집배업무 근무지침’ 논란

우정사업본부는 이달 8일 일선 우체국에 ‘토요일 집배업무 근무지침 시달’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주요 내용은 토요일에 소포와 특급우편을 배달하는 직원에게만 초과근무 실적을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공문에서 “토요일 근무를 최소화하고 휴무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집배원의 여가시간을 확대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주말에 출근하는 직원들은 별도의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각종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는 대부분의 주말근무가 ‘무료봉사’로 전환될 판이다. 인력충원이나 예산 확보 없이 기계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이려다 보니 억지춘향 식 제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국가기관인 우정사업본부는 세금 대신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자기가 벌어 자기가 쓰는’ 시스템이다. 2011년까지 1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지난해는 14년 연속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정사업본부의 이러한 운영성과가 모래 위의 성처럼 불안한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우정사업본부의 전체 예산 가운데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8.4%에 달한다. 최근 몇 년간 우편수지의 적자 폭이 확대되면서 자금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즌이 돌아오면 일선 우체국들은 인건비를 줄이라는 압박을 피할 길이 없다. 정부 차원의 지원 없이는 인력 충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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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기사 2] 증가하는 공무원 초과근무수당 소송

정부를 상대로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수당 청구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법원은 대체로 “일한 대가를 지급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 2010년 6월 소방공무원 242명이 서울중앙지법에 서울시를 상대로 초과근무수당 지급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11월 법원은 “서울시는 소방공무원 242명에게 76억9천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방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화재·재난 등 위급한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초과근무가 일상화돼 있다. 2교대나 3교대 근무를 반복하면서 야간과 휴일에도 계속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동안 예산 부족을 이유로 초과근무 시간 중 일부시간에 한정해 수당을 지급해 왔다.

이에 대해 법원은 미지급된 수당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기준 전국 16개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제기된 소방직 공무원들의 초과근무수당 지급 소송은 26건이다. 이 중 11건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고, 15건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나온 판결은 모두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다. 1심 재판 결과를 기준으로 소방직 공무원 3만명에게 지급돼야 할 초과근무수당은 6천332억원이나 된다.

지난해 10월에는 현직 경찰관들이 초과근무수당 지급소송을 제기했다. 오승욱 군산경찰서 경감은 “일선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들은 휴일에 초과근무를 해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한다”며 최근 3년간 초과근무수당 미지급분 청구소송을 냈다. 해당 소송에는 경찰관 5천여명이 동참했다.

안전행정부는 그동안 업무지침상 “휴일 근무수당과 시간외근무수당을 함께 지급할 수 없다”는 ‘병급 금지’ 규정에 따라 휴일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소송에 참가한 경찰관들은 “근로기준법상 휴일근무수당과 시간외근무수당·야근수당은 모두 병급 가능하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교도관들이 미지급 초과근무수당 지급 청구소송을 냈다. 이어 같은해 7월에는 전국공무원노조 조합원 290명이 "미지급된 시간외근무 수당과 연가보상비 중 1인당 600만원씩 17억4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120개 기관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보수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실제 근무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수당지급은 최대 하루 4시간, 월 67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평일 하루 한 시간은 계산에서 빼고 있다"며 "공무원 수당 규정과 지침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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