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다, 위기다 했지만, 이보다 더 한 적이 있었을까. 민주노총이 임원선거에서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일 오후 과천시민회관에서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치러진 임원선거에서 기호1번 이갑용 후보가 47.7%를 얻어 45.3%를 얻은 기호2번 백석근 후보를 앞섰지만 과반을 넘지 못했다. 찬반투표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대의원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가 무산됐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갑용 후보의 자격 여부 등을 두고 법적인 논란도 예상된다. 위기의 민주노총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야 할까.

조속히 지도부 뽑고 현장 찾아야 

양성윤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또 산을 넘어야 하나 보다. 지난 20일 7기 임원을 선출하는 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을 뽑지 못하고 유회가 돼 당분간 지도부 공백 상태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들 민주노총이 위기에 빠졌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진단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전국 곳곳에서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만큼이나 힘든 여건에서 싸우고 있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마저도 만들 수 없는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에게는 민주노총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구동성으로 투쟁과 혁신을 얘기한다. 그러나 스스로는 어떠한가. 나부터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고립과 반목, 익숙하고 낡은 관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연대·대중적 참여·노동운동 복원을 통해 민주노총의 잃어버린 존재감을 찾아야 한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 그래서 보다 공세적으로 ‘노동기본권 확보’ 투쟁전선을 전면화해야 할 시기다. 조속히 지도부를 힘 있게 세워 갈등과 절망이 아니라, 단결과 희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노총을 바로 세우는 길, 그 답은 현장에 있다.

통합지도력 다시 세워야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

소위 노동운동 전체의 위기 상황이지만 민주노총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최대 위기상황이다. 잠복해 있던 모든 일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지난 55차 대의원대회가 절차상 문제로 유회된 후 위원장 선거를 올해 3월에 치르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민주노총 지도력의 위기라도 극복해 보고자 통합지도부 구성을 위해 원탁회의를 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원탁회의에 참여했던 모든 세력들이 욕심을 버리고 조직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 한 몸을 버리겠다는 각오로 임했다면 과연 통합지도부가 안 꾸려졌을까.

통합지도부를 꾸리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으면 그 연장선상에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결국 인물에 대한 얘기에 들어서면 그 원칙들은 어느새 다 날아가 버린다.

심지어 이번 대의원대회에서 당선자를 내지도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출마한 후보들 모두 (대의원들로부터) 불신임을 받은 격이다.

지도력이 세워져야 위기를 극복할 수순이라도 만들 수 있는 만큼, 지금으로서는 통합지도력을 재창출 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 나 자신부터 반성하자. 실컷 혁신하자고 얘기해놓고 남의 탓만 하고 있으면 답도 없고, 사람과 조직도 망친다.

형식적 집행부 구성 안 돼 

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후보를 만드는 과정에서 혁신을 위해 정파를 초월한다고 (원탁회의 등을) 했지만 여전히 정파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선거를 치르다 보니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것 같다. 형식적으로 집행부를 구성고자 한 게 위기를 심화시킨 게 아닌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좀 더 진지하게 진단하고 처방하고 계획을 세워서 선거를 진행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대의원대회를 하든 선거를 하든 힘을 받을 수 있겠는가. 모든 면에서 (새 집행부가) 들어설 조건이 안 된다. 이미 민주노총은 리모델링으로 해결될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게 평가하고 합의를 통해 혁신안을 마련한 뒤 집행부를 세워야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마냥 형식적으로 집행부를 세우려 하면 안 된다.

조합원들 믿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비감하고 부끄럽다. 민주노총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대중조직으로서 발생해서는 안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천재지변도 아니고 성원 부족으로 지도부를 선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은 단순한 정파 문제를 넘어 민주노총의 난맥상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향후 어떤 지도부가 들어서든 이제는 민주노총의 사업 내용이 바꿔야 한다. 정파적 이익이나 정치적 계산 등 이러저러한 핑계와 변명이 이젠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돌파구를 찾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민주노총의 주인인 조합원들을 믿고 지역과 현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조직ㆍ비정규직ㆍ중소ㆍ영세ㆍ이주 노동자 중심으로 조직화 사업을 다시 설계하자.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지경에 이른 만큼 노동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문 닫고 다시 여는 마음으로 시작하자. 박근혜 정부 동안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조합원들과 함께 현장을 지키며 노동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만이 살길이다.

산별ㆍ지역 결합 속 지도부 세워내야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민주노총 지도부 선출이 무산된 원인으로 정파를 지목하는데 이는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노총이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뽑는 대의원이 각 사업장에서 어떻게 선출되는지를 보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출할 대의원 수를 산별연맹으로 다시 지역지부로 지회로 할당하는데 이건 폭탄 돌리기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선출되는 게 지금의 민주노총 대의원이다. 그렇다보니 정파적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입되면 회의가 유회되고 투표가 무산되는 구조로 가는 것이다.

대중적 긴장감뿐만 아니라 전략적 긴장감도 무너졌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양날개론의 진두지휘자로서의 자기역할을 수행해 왔다. 2011년과 2012년을 거치면서 정치세력화는 바닥이 드러났고, 산별노조 역시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별다른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창립 이후 15년간 지켜왔던 전략적 과제가 상실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억지로 민주노총 지도부를 세워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지도부를 선출한들 '실패'라는 예정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산별연맹 비대위 체계로 가면서 직선제를 추진하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산별연맹의 지역조직과 지역본부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자생력을 갖고 지역운동을 주도한다면 어떨까.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억지로 지도부를 세워서 관성적으로 가느니, 긴 안목으로 지역에서부터 민주노총을 세워나가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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