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교과서에서는 노동법을 사용자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법이라고 말한다.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는 실질적인 평등관계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 근대사회의 노동현실이기 때문에 고전적 의미의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수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요약하자면 노동법은 약자를 위한 법이라 할 것이다.

최근에는 노동법이 분화되고 복잡화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노동자들의 등장이 눈에 띈다. 파견과 도급이 누적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과연 누가 사용자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급여명세서상에 박혀 나오는 대로 고용관계를 받아들일 뿐이다. 얼마나 판단하기 어려운지 수년에 걸친 법원의 판결로도 정리가 되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계속 지적되는 불법파견, 위장도급의 문제가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노동자 간의 분화현상이라 할 것이다. 같은 노동자이지만 근로조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연봉이 수억원에 이르는 전문고위직부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들까지 말이다. 솔직히 수억 연봉 노동자를 노동법으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일부 규정은 적용제외를 하더라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지 않느냐라는 주장이 그렇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이 갖는 함정을 우려한다. 머지않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같은 논리가 전이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 초 공공부문 종사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정책이 민간기업에게도 그대로 전가되지 않았던가. 5년간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최저임금은 역대 최저인상률을 자랑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노동법의 관심은 노동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사용자를 상대로 한 전체 노동자 보호와 동시에 이들 중에서도 열악한 노동조건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책개발에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개별적 근로관계에서는 이른바 파견법이나 기간제법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집단적 노사관계법에서는 노조법이 당연히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암울하다. 특히 집단적 노사관계법은 노동법 본래 정신에서 역행하는 경우가 많다. 더 약한 노동자를 위한 보호에 무관심하다. 노동자의 단결로 사용자와의 힘의 균형을 이루고 노사 자율로 노동권 향상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변하지 않는 노동관계 기본이론에 충실히 따른다면 집단적 노사관계의 발전 없이는 개별적 근로관계에 관한 제도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행 제도 중 집단적 노사관계법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임자 제도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노동기본권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고 말았다. 제도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2010년 7월1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를 도입하면서 정부는 “상후하박의 전임자 구조”를 “하후상박”으로 바꾸는 것이 제도 도입의 주요 취지라 선전했다. 대규모 제조업 사업장의 전임자수가 기업의 경영을 어렵게 할 만큼 많기 때문에 이를 줄이고, 그 대신 상대적으로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였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럴 듯해 보였다. 의회가 만든 원래 법률 취지도 그러했다고 본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결과는 어떤가. 대기업 사업장 대규모 노조의 전임자수가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타임오프 협상 과정에서 전임자의 영향력은 더 커 보였다. 문제는 정작 보호하겠다고 다짐하던 중소·영세 사업장 노조의 전임자수는 줄어들거나 아예 보호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복수노조 설립 허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세 사업장에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사용자의 지원을 받은 복수노조가 공정대표 운운하며 기존 노조의 타임오프까지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타임오프 제도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유다. 최근 노사정은 새로운 타임오프 고시를 위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논의의 방향은 간단하다. 문제를 보완하면 그만이다. 진정 약자를 위한 노동법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 출발이어야 한다. 용기 있는 자기반성도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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