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공단 청주지사는 20일 매그나칩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김진기(사망당시 38세)씨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 청구사건에 대해 산재 인정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은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공단에 따르면 이달 14일 대전지역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위원회 심의에서 김씨의 백혈병을 업무상질병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공단 청주지사에 통보했다. 대전지역 질판위는 "김씨의 업무종사 기간과 의무기록상 질환 내용이 사실과 같고, 피폭된 작업환경과 질병의 연관성이 인정됨에 따라 업무상질병 결정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김씨는 97년 LG반도체에 입사한 뒤 회사 이름이 하이닉스 반도체·매그나칩 반도체로 바뀌는 사이 14년 동안 청주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했다. 2008년 갑상선 질환을 얻었고, 2010년 만성골수성 단핵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1년 뒤 숨졌다. 고인의 유족은 곧바로 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김씨가 14년 동안 근무한 임플란트 공정은 반도체 생산공정 중에서도 방사선·비소와 같은 발암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올림은 "이번 산재승인 결정이 이후 삼성과 하이닉스·매그나칩을 비롯한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재인정과 직업병 예방에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단의 이번 결정이 향후 백혈병에 걸린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를 대폭 인정해 주는 신호탄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산재 신청을 담당한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고인의 경우 지속적으로 방사선에 노출됐고 14년간 같은 공정에서 일했지만 역학조사 결과는 업무연관성이 낮은 것으로 나왔다"며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경우인데도 간신히 산재 인정을 받은 경우"라고 말했다.

한편 백혈병에 걸린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하청노동자가 지난해 공단에 산재신청을 한 뒤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황유미·이숙영씨의 유족들은 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따른 행정소송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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