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윤식 변호사(법률사무소 로정)

대상판결/ 수원지방법원 2013. 2. 15. 2009가합25824 판결





들어가는 말



이명박 정부 초기 야심차게 시행된 공공기관선진화 정책이 있었다. 그 핵심은 불요불급한 공공기관을 시장에 내놓아 효율과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것이었지만 그 정책의 시행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통의 나날을 보내온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 산하기관인 을 관광개발 주식회사(이하 을 회사) 사례이다. 이 사례에서도 공공기관선진화 정책의 일환으로 중앙행정부처인 갑이 관리청으로 돼 있는 골프장과 그 골프장을 위탁관리하는 공공기관인 을 회사에 대한 매각이 진행됐고 그 과정에서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 캐디들로 조직된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기 위한 공작이 자행됐다.

본 사건은 2008년 9월 시작돼 아직도 진행형에 있다. 올해 2월15일 수원지방법원은 ‘골프장 사업주의 캐디에 대한 과도한 징계처분과 이로 인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하는 대한민국 사법사상 최초의 판결을 선고했다(수원지방법원 2013. 2. 15. 2009가합25824 판결). 그러나 그 판결은 재판부의 고뇌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약 3년3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치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그 판결과 관련해 본 사안의 개요, 판결의 핵심적 내용, 판결의 의의와 한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사건의 개요



2008년 9월15일 골프장 캐디인 원고 A와 관리자인 B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이를 빌미로 을 회사는 A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했다. 그 제재조치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그 회사의 캐디들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을의 감독기관인 위 갑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항의성 글을 올리는 등 집단적으로 항의했다. 이에 을은 그 집단적 항의에 참여한 조합원들(52명)과 A에 대해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 을 자신이 캐디들을 관리할 목적으로 제정한 ‘경기보조원수칙’에 정해지지도 않은 출장유보처분과 제명처분을 각각 단행했다.

이와 같이 다수의 조합원이 출장을 하지 못하는 징계처분으로 인해(캐디가 골프장에서 골프장 이용객에 대한 경기보조를 하는 것을 출장이라고 하는데 캐디들에게는 정해진 임금이 없고 그 출장을 해야만 그때그때 그 대가를 지급받아 생활한다) 노조가 와해 직전에 이르자 노조 간부들 3명은 그 출장유보자를 관리해 노조를 지킬 목적으로 겨울철 휴장기를 이용해 결장을 했고, 을 회사는 무단결장을 이유로 이들에 대해 제명처분을 했다.

이와 같이 제명처분과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을 받은 조합원들은 2009년 1월 수원지방법원에 징계처분의 무효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위 조합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인정하고 그 징계처분이 과도한 징계라고 인정한 후 모두 무효임을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했다(수원지방법원 2009. 10. 9. 선고 2009가합4896 판결). 그 판결에 불복해 을 회사가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위 조합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임을 인정한 다음 그들에 대한 징계처분이 노조 와해 목적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해 무효라고 판단했다(다만 위 조합간부들에 대한 징계처분 제외, 서울고등법원 2011. 8. 26. 선고 2009나112116 판결). 이에 패소한 위 조합간부들과 을 회사가 각각 상고해 현재 대법원에 소송계속 중이다(대법원 2011다78804).

한편 조합원들은 징계처분이 무효라는 판결을 선고받은 직후에 임금지급을 구하는 2차 소송을 제기했고(조합원에 대한 차별배치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툼을 이유로 을 회사가 2009년 3월 2명의 조합원에 대해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을 단행했고 조합원들은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의 무효확인과 임금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위 2차 소송과 함께 제기했다) 그에 대한 판결이 수원지방법원의 지난 2월15일 2009가합25824 판결이다. 이 소송에서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고 징계처분은 과도한 것으로 무효이고 따라서 을 회사는 자신들에게 해고기간 동안에 받아야 할 소급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청구를 주위적 청구로, 위 징계처분이 노조 와해 목적 등을 이유로 자행된 것이어서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으므로 피고는 자신들에게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상당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손해배상청구를 예비적 청구로 제기했다.



본 판결의 핵심적 내용



60여쪽에 이르는 본 판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조합원들이 근기법상 근로자인지 여부 및 노조법상 근로자인지를 판단하는 부분과 불법행위에 관한 판단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2009나112116 판결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 판결이라서 그에 대해 자세하게 적지 않는다(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필자의 “골프장캐디의 근로자성”, 법조 통권 제675호, 2012. 12, 157면 이하를 참고 바람). 후자에 대한 판결 내용이 이번 글의 핵심적 내용이고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원고들은 피고와 사이에 근로계약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이 사건 노동조합의 정당한 조합원이고, 피고는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노조법에 따른 의무를 부담하는바, …중략… 피고는 위 원고들(별지 (2) 인용금액표 ‘원고’란 기재 각 원고들; 위 조합간부들을 제외한 조합원들임)에게 출장유보처분이나 제명처분을 할 정도의 제재사유가 없음에도 원고들을 이 사건 골프장에서 배제시키려는 의도하에 원고들에게 불이익한 처분을 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 원고들은 이 사건 골프장에 출장해 골프장 이용객들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캐디피를 받지 못하게 됐으며, 특히 이 사건 각 출장유보처분은 기한을 정하지 않고 사실상 피고가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일 때까지 경기보조원 출장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현재까지도 그 효력이 유지되는바, 피고는 정당한 이유 없이 위 원고들의 이 사건 골프장 출입을 유보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위 원고들이 경기보조원으로서 이 사건 골프장 이용객들에게 경기보조용역 등을 제공하고 캐디피 상당의 금원을 지급받을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할 것이고, 이와 같은 피고의 행위는 우리의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는 것으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는 민법 제750조에 따라 위법한 위 각 처분으로 인하여 위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중략…

위 조합간부들을 제외한 원고들이 피고의 이 사건 각 출장유보처분 및 1 제명처분(위 원고 A에 대한 제명처분을 말함)으로 인해 입은 재산상 손해는 각 처분이 없었더라면 향유하거나 취득할 수 있었던 캐디피 상당액이라고 할 것인데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이 원고들과 피고 사이의 계약 내용, 원고들이 제공하는 경기보조용역의 대체가능성·난이도, 위 처분에 이르게 된 경위, 기타 이후 원고들의 재취업 유무 및 그 가능성, 재취업까지의 기간, 재취업의 고용계속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피고의 위법한 이 사건 각 출장유보처분 및 1 제명처분으로 인하여 배상해야 할 원고들의 일실수입 범위는 위 원고들이 이 사건 골프장을 대체할 다른 직장을 구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여 지는 6개월 정도 기간 동안의 원고들의 수입액 상당액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본 판결의 의의와 한계



본 판결이 갖는 의의는 첫째 골프장 사업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캐디에 대해 과도한 징계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서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둘째 이러한 판결로 인해 골프장 사업주가 캐디에 대해 미국식으로 ‘당신 해고야’라고 하면 캐디는 군말 없이 사업장을 떠나야 하는 현실이 조금은 개선될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 판결이 가지는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위 원고들에 대한 제명처분 및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의 효력이 본 판결의 선고시까지도 지속되고 있음에도(판결도 위와 같이 이를 명시함) 손해배상의 범위를 6개월로 한정할 근거가 과연 있느냐 하는 것이다. 피고가 창출한 불법행위 상태는 징계처분의 효력이 지속되는 동안은 지속되기 때문에 그 불법행위로 인해 피고들의 손해 역시 그 효력이 지속되는 기간 동안에 계속되기 때문에 그 기간을 6개월로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본 판결은 일종의 조정(調停)적 판결을 선고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원고들이 을 회사가 운영하는 골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징계처분 이후에 거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해당 중앙행정부처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결은 정의와 형평을 고려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을 회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의 과실을 무려 25%로 평가해 그 책임을 75%로 제한을 했는데 이 판시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회사가 원고들을 골프장에서 배제할 목적하에 계획적으로 징계를 자행했음에도 원고들의 일부 행위를 문제 삼아 과실상계를 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셋째 조합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이 여러 정황상 분명함에도 본 판결은 위 2009나112116 판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아쉬움이 매우 크다. 이에 대해 자세한 논의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앞서 언급한 필자의 논문을 참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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