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대림산업(주) 화학공장 폭발사고로 죽거나 다친 17명의 사상자 가운데 15명이 하도급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원청업체의 고위험 작업을 하청업체가 분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하청노동자가 중대재해를 당했을 때 원청업체 사업주가 처벌을 받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줄 잇는 외주하청 산재사망=17일 건설노조에 따르면 대림산업 폭발사고 사상자는 대부분 하도급 업체인 유한기술에서 재하청을 받아 사고현장에 투입된 노동자들이었다. 대림산업은 이달 12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진행되는 여수 고밀도 폴리에틸렌 공장 정기보수를 유한기술에 맡겼는데, 유한기술은 다시 하청업체인 D사에 재하청을 줬다.

이 같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업체인 대림산업은 산업안전감독 책임공방에서 벗어나기 쉽다. 대신 하도급 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영세업체인 D사가 사고 노동자를 직접고용했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가 분리된 간접고용의 대표적인 폐해다.

최근 발생한 주요 산재사망사고 피해자들도 대부분 외주도급 노동자들이었다. 지난달 7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추락사한 진아무개씨도 하청노동자였다.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올해 1월에도 20대 사내하청 노동자가 작업 도중 사망했다. 같은달 1월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던 중 열차에 치여 숨진 노동자도 하청업체 소속이다. 성수역에서는 지난해에도 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 밖에 올해 1월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 지난해 현대미술관 서울관 화재사고, 2011년 이마트 탄현점의 질식사고 피해자도 대다수가 하청노동자였다.

◇'하나 마나 한' 책임 조항=외주하청 노동자들이 죽음에 취약한 이유는 간단하다. 힘들고(difficult)·더럽고(dirty)·위험한(dangerous) 3D 업종에 집중 배치되는데, 이들에 대한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원청업체들은 업무를 외주화하는 동시에 해당 업무에 투입되는 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감독 책임으로부터 벗어난다.

산언안전보건법(제29조)은 원청업체에 대해 △안전·보건에 관한 협의체의 구성과 운영 △작업장 순회점검 등 안전·보건관리 △수급인(도급업체)이 근로자에게 하는 안전·보건교육에 대한 지도와 지원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법에 규정된 책임이 하나 마나 한 얘기다.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만 있다.

◇유해위험 사업 하도급 금지해야=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능력도 권한도 없는 하청업체가 모든 법적책임을 지는 구조에서 재해가 근절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가장 시급한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유해위험 사업의 하도급을 금지시키는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과 같은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필수적인 안전조치를 시행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기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살인법은 캐나다와 호주의 일부 주정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원청업체 사용주가 안전관리에 소홀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원청업체에 강력하게 법적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하고, 전 산업에 만연한 간접고용을 규제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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