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나왔다. 하지만 여성에게 약간의 떡고물이 주어질지 모르나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지는 못할 것이다. 정권의 역사적 기원과 계급 속성, 지지층의 기반이 여성 권익과는 상충하기 때문이다.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박정희의 자식이라 당선된 역사적 한계는 한국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분발이 없다면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민주주의와 더불어 여성 권익도 상당히 후퇴할 것이다. 역사는 노동자와 민중의 권익이 개선됐을 때, 여성의 권익도 같이 개선됐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개선은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와 동원으로 가능했다. 노동자와 민중의 절반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와 변혁

세계여성의 날인 3월8일 베네수엘라 대통령 유고 차베스의 장례식도 열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넷판은 “유고 차베스, 그는 혁명이 여성에게 달렸음을 알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98년 민중운동을 등에 업고 차베스가 대통령에 처음 당선되면서 여성들의 참여가 늘었고 권익이 향상됐다. 2002년 미국이 사주한 민간-군부 합동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거리로 뛰어든 시위대 선두에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가 차베스다. 그는 우리 아들이다.” 차베스는 혁명이 여성들에게 의지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여자들만이 혁명을 할 열정과 사랑을 갖고 있다”고 외쳤다. 2006년 베네수엘라 정부가 만든 신헌법 제88조는 돌봄노동을 생산적인 일이라고 인정했다. “아이를 키우고, 다림질하고, 세탁하고, 음식 준비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대단히 힘든 일이지만 ‘일’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은 집에서 주부이자 노동자”라고 차베스는 말했다.

차베스에 더해 <가디언>은 여성을 새 사회 건설의 중심에 세우는 작업의 중요성을 이해한 지도자로 탄자니아 독립의 영웅인 줄리어스 니에레레, 아이티에서 민주선거로 탄생한 첫 대통령인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를 내세웠다. 자조와 협동에 기반한 아프리카 사회주의를 내세웠던 니에레레는 경제활동과 성과에 여성의 동등한 참여를 강조했다. 아리스티드는 여성부를 신설하고 여러 장관직에 여성들을 기용했다. 볼리비아에서는 2000년 상수도를 민영화하고 빗물을 식수로 모은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든 미국기업 벡텔(Bechtel)을 몰아내는 운동에서 여성 원주민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에는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우익 의원들의 저항을 좌절시키는 데 볼리비아 여성들이 제 몫을 했다.

세계 최초의 노동자 정부라 일컬어지는 1871년 파리코뮌도 정치적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던 노동자와 하층계급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 없이 여성도 포함됐다. 당시 결성됐던 여성시민중앙위원회는 <파리의 여성시민들에게 보내는 호소>에서 “인민의 위대한 대의를 위해,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권리와 의무 (…) 모든 특권과 불평등의 종식을 표현하는 코뮌은 지배계급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성차별을 없애고 모든 주민의 정당한 청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금수 <세계노동운동사1>·후마니타스·2013·434~435쪽)

노동운동의 혁신, 여성의 참여에 달려 

한국 노동운동의 힘이 약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여성의 참여 부족을 들고 싶다. 노동운동의 강국이자 복지국가의 모범국인 북유럽을 보면, 여성 조합원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유럽노사관계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2008년 현재 덴마크 50.5%, 핀란드 54.7%, 노르웨이 52.1%, 스웨덴 51.5%였다. 반면 고용노동부가 낸 ‘2011년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전체 조합원에서 여성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22.8%에 불과하다. 양대 노총을 나눠서 보면 한국노총 19.5%, 민주노총 26.3%다(정부가 법외노조로 낙인찍어 현황조사에서 뺀 전국공무원노조를 넣으면 여성조합원 비율은 조금 늘 것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돌아다닌 지는 오래됐다. 이를 극복할 이런저런 처방전이 제시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겉돈다는 느낌이 든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장기 전략과 구체적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기원을 한국전쟁 전의 전평이나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이도 있지만, 나는 70년대 섬유봉제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 투쟁이 그 역사적 기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유주의 정권 10년을 거치면서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역행한 이유도, 사회경제적 모순은 날로 악화되는데 노동운동이 침체한 이유도 여성의 참여와 개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대변될 때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도 후퇴를 멈추고 전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조합원 가운데 여성 조합원 비율은 22.8%밖에 안 된다. 그런데 전체 여성노동자 가운데 노조로 조직된 조합원 비율은 얼마나 될까. 고민의 출발점은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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