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지부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은행에 들어와서는 카드·대출·예금 등 단기 실적을 올리기 위한 단순업무에 매몰됩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지점장을 제외하고 갈 곳이 없어요. 은행 노사가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은행 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 위원장 선거에서 상급단체에 파견돼 있던 후보가 현장에서 올라온 나머지 두 명의 후보를 가볍게 제치고 당선됐다. 주인공은 지난 3년간 금융노조 정책국장과 정책부위원장을 지낸 유주선(46·사진) 위원장이다. 그는 상급단체 활동 시절 신입초임 원상회복과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전환기간 단축 등 굵직한 금융산별 노사합의를 이끌어 낸 인물이다.

유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시 태평로2가 신한은행 본점 17층 지부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상급단체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3년간 직급별 비전을 완성해 신한은행이 조합원들의 평생직장으로 거듭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비전 부재가 부른 은행원의 조기퇴직"

유 위원장이 선거운동 기간과 지난달 중순 열린 취임식에서 반복적으로 되뇐 말은 ‘새로운 비전’이었다. 그는 나날이 확산되고 있는 은행의 성과문화가 금융 노동자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고 봤다.

“영업점 간 경쟁이나 개인 간 경쟁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전체 직원들이 눈앞의 성과에 매몰돼 앞날을 준비하기 힘든 실정이죠. 살인적인 노동강도·스트레스·야근은 물론이고요. 노동조합이 직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되찾아 줘야 합니다.”

유 위원장은 "장기비전 부재가 은행원들의 조기퇴직과 연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은 고액의 인건비가 들어가는 중장년층을 고용할 이유를 못 느끼고, 당사자들도 퇴직 압박에 스스로 은행에서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여러 은행이 시시때때로 단행하는 희망퇴직 등 퇴출 프로그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 유 위원장의 판단이다.

“점포수가 줄고 있어 승진 적체와 고령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40대 중반 이후 은행원들은 자연스럽게 퇴직 압박을 느낍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당장 비용이 줄겠지만 숙련된 노동력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손해입니다.”

"영업현장 2선 체제로 운영해야"

많은 은행원들이 중장년에 접어들고 지점장·부지점장 승진에서 밀리면 은행을 떠난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본점에서 업무를 이어 가는 일은 드물다.

유 위원장은 “전체 직원들이 단기 실적에 도움이 되는 보험·카드·예금 유치에 매몰돼 있어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 힘들다”며 “노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직원들의 역량개발에 나서 은행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영업점 운영과 인원배치가 지나치게 일선업무(영업)에 집중돼 있는 관행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 영업점에서는 영업 외에도 사고관리 등 뒤에서 이뤄지는 업무가 상당히 많습니다. 2선 체제로 영업점을 운영해 점포당 1~2명에게 중간 관리업무를 맡기면 중장년층 고용안정에 큰 효과가 있을 겁니다.”

유 위원장은 2선 체제 도입을 포함해 조합원들의 능력함양을 통한 고용안정 방안을 논의하는 ‘직급별 비전 마련을 위한 노사공동 대책기구’를 올해 안에 구성할 방침이다.

"대한민국 최고 노조 만든다"

그가 말하는 비전은 신한은행을 조합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다해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드는 일이다. 임기 3년을 관통하는 그만의 철학이다. 올해 노사협의회와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요구할 예정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유 위원장은 이와 함께 "지난해 금융산별의 'PC-OFF제' 합의를 도출한 당사자였던 만큼 전문성과 경험을 발휘해 경영평가와 연동된 실효성 있는 제도 시행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합비 20% 인하 △KPI(Key Performance Index) 지표 단순화를 통한 성과주의 완화 △무기계약직 노조 가입 추진 △양성 평등을 위한 여성 승진할당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외부환경은 금융 노동자들에게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노조의 여러 활동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관심과 신뢰가 필요합니다. 비전을 갖고 멀리 내다보는 사업을 펼칠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노동조합을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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