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정 기자

당신은 어느 케이블TV를 보는가. CJ헬로비전? 티브로드? 씨앤앰? HCN? CMB?

어느 케이블TV를 보더라도 그곳에서 일하는 기사들의 노동조건은 비슷비슷하다. 비정규직 신분에다 박봉·장시간 노동·영업 스트레스·전무하다시피한 복지환경까지…. 판에 박은 듯 열악하다.

이 같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깃발을 든 사람들이 있다. 수도권 최대 규모의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씨앤앰의 22개 협력업체에서 A/S·설치·철거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달 13일 창립총회를 거쳐 18일 공개활동에 돌입한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지부장 김영수)에 쏟아지는 관심은 예상보다 뜨꺼웠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출퇴근 선전전 때 슬쩍 와서 '어떻게 되는 거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김영수(42·사진) 지부장의 말이다. 지난 20일 저녁 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위치한 씨앤앰지부 사무실 인근에서 만난 김 지부장의 얼굴은 까칠했지만 눈은 맑았다. 노조 공개활동 이후 몰아치는 일정과 여러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을 이어 가고 있지만 매일 쌓이는 가입원서와 문의전화에 없던 힘도 절로 난다고 했다.

노조 깃발을 띄우기까지 꽤나 긴 시간을 보냈다. 수도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씨앤앰 하청업체 기사들을 만나 조직화하기를 1년. 저마다 속한 업체들은 달랐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토로는 한결같았다.

"말도 안 되는 평가지표를 들이대는 통에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다."

"영업 압박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수수료를 인상해 줬으면 좋겠다."

"4대 보험이라도 됐으면…."

"기사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노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더라고요. 케이블방송업계 종사자들도 인간답게 살아 보자는 판단을 했어요."

김 지부장은 노조를 만들기 전부터 회사(팀스네트웍스)에서 입바른 소리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회사가 경기가 어렵다며 10만원씩 주던 식대를 끊었을 때 가장 먼저 사장을 찾아가 항의했고, 쥐꼬리만 한 당직비를 단돈 1만원이라도 올려 달라며 무단결근을 감행하기도 했다. 덕분에 시말서를 쓰고 A/S 팀장에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 그가 노조결성에 총대를 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김 지부장이 기사들의 복지개선을 얘기할 때마다 업체에서는 "씨앤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사실 협력업체들도 본사인 씨앤앰으로부터 쥐어짜기를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씨앤앰은 22개 협력업체들을 36개 지표에 맞춰 상대평가해 S등급부터 A~D까지 등급을 매기는 식으로 업체를 관리한다. 36개 지표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영업실적이다.

업체는 본사에서 하는 방식과 똑같이 기사들을 관리한다. 영업실적에 시달리던 일부 기사들은 실적을 허위로 작성하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수수료를 대신 지급해 주고 영업건수를 사 온 뒤 실적을 채우기도 한다. 계약만료가 가까워진 고객들을 해지시켜 재가입시키는 편법도 있다. 김 지부장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노조를 만든 것은 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기사들이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겁니다. 일을 하면 한 만큼 대우를 받고, 좀 사람답게 살아 보자는 거죠."

김 지부장은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지부장으로서 자신은 부당한 처우를 받더라도 조합원들은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본사나 협력업체들이 또 어떤 부당노동행위를 할까 걱정이 돼 잠이 안 온다"면서도 "우리의 요구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주먹을 쥐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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