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방송 씨앤앰 협력업체(도급업체)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A씨는 1주일에 평균 54시간을 근무한다. A/S와 철거작업을 담당하는 기사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영업이 주요 업무가 됐다. 매달 인터넷 10건, 디지털TV 10건, VoIP(인터넷전화) 10건, 아날로그TV 15건 이상 건수가 할당된다. 매일 아침 조회에서 영업실적을 체크·강요받는다. 그렇다고 영업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많을 때는 30~40건씩 케이블 철거작업도 한다.

A씨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시간이 넘고 토요일에도 7~8시간 일한다. 휴일근무도 다반사다. 한 달에 쉬는 날은 2~3일이 고작이다. 월 평균 216시간을 허리가 휘도록 일하지만 A씨가 손에 쥐는 돈은 각종 수당과 인센티브를 포함해 250만원도 안 된다. 입사 초기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협력업체 사람들이 노조를 결성한다더라"는 소문을 귀엣말로 전해 들은 A씨가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근기법 위반은 기본, 저임금에 고통=최근 케이블방송통신업종에서는 최초로 비정규직노조가 설립됐다. 지난해부터 물밑으로 노조설립을 추진해 온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지부장 김영수)는 지난 13일 창립총회를 갖고 18일부터 공개활동을 시작했다.

지부는 수도권 최대 규모의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씨앤앰의 2·3차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들었다. 이달 12일 현재 130여명이 지부에 가입했다.

씨앤앰의 22개 협력업체에서 A/S·설치·철거업무를 하는 이들이 노조 건설에 나선 이유는 과중한 노동량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복지, 과도한 영업실적 압박 때문이다.

김진혁 지부 사무국장은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고 돼 있지만 퇴근시간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퇴근을 해도 A/S나 민원이 생기면 해당 팀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특히 "영업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며 "매일 아침조회에서 영업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면전에다 대고 욕을 하거나 핀잔을 주고 무시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게다가 연봉협상이 없거나 입사시 연봉을 그대로 유지하는 업체들이 많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곳은 부지기수다. 협력업체 어디에서도 취업규칙을 노동자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부에 따르면 A/S 기사들의 경우 당직과 영업수당까지 포함해야 월 230여만원 정도가 된다. 일부 설치 기사들은 건당 수수료 형태로 임금을 받는다. 다른 케이블TV업체들은 대개 설치 건당 2만원까지 쳐 주지만 씨앤앰은 그 반토막 수준으로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치·철거 기사들은 전봇대를 타다 다치는 경우가 많지만 안전장비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부 관계자는 "전봇대를 탈 때 전기에 감전될 수 있다고 하니까 사무실 여직원이 '고무장갑은 줄 수 있다'고 말하더라"며 "대부분 다치면 공상처리나 병가를 내고 자비로 처리한다"고 말했다.

◇다단계 하도급에 노동자만 죽을 맛=이들의 열악한 형편 속에는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적인 족쇄가 도사리고 있다. 씨앤앰의 대주주는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와 MBK파트너스다. 맥쿼리와 MBK가 2007년 씨앤앰을 인수하면서 A/S·설치·공사 업무 등을 전부 지역별 협력업체에 외주화했다. 협력업체들은 다시 설치·철거 업무를 개인사업자에 넘겨 재도급화했다.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형태가 일상화된 것이다.

씨앤앰은 하도급 계약기준과 달리 여러 가지 지표와 평가항목을 만들어 협력업체별로 등급을 매기고, 평가를 통해 감액하는 방식을 도입해 업체 간 경쟁을 유발했다. 업체 간 경쟁은 고스란히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졌다.

지부는 "씨앤앰에서 요구하는 실적과 성과에 얽매여 노동자들의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다"며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를 만든 만큼 업체의 부당노동행위 근절과 임금인상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희망연대노조와 지부는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씨앤앰 비정규 노동자 노동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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