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채필(57·사진)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났다. 장애인 출신 첫 노동부 장관, 그 기록보다는 유일한 관료 출신 첫 노동부 장관이라는 사실이 더 유명했다. 이 장관은 82년 노동부 사무관(행정고시 25회)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한 달쯤 남은 장관 임기를 채우면 그는 30여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감한다.

지난달 30일 딱딱한 정부과천청사 장관실이 아닌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박운 본지 편집국장이 이 장관을 만났다. 밥을 먹고 술을 한두 잔 기울이자 그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렸다. 일부 답변은 서면인터뷰 내용을 인용했다.

강건하고 꼼꼼한, 그러나 일밖에 모르는?

<매일노동뉴스>가 퇴임을 앞둔 노동부 장관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던가.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이 2010년 7월2일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떠돌던 국무총리 혹은 대통령실장 임명설에 대해 부인하고는, 일주일 만인 같은해 7월8일 대통령실장이 돼 노동부를 떠난 적은 있었다. 뜻하지 않은 퇴임 인터뷰가 된 셈이다.

이번에는 만나자고 요청했다. 인간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의도대로 잘 풀리지는 않았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조각이 늦어지면서 연임 풍문이 돌기에 “퇴임 인터뷰인지 연임 인터뷰인지 잘 모르겠다”고 농담을 건네자 “현직 장관 인터뷰를 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임기가 하루든 한 달이든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고 했다. 너무나 정석적인 대답들, 역시 딱딱했다. 사람 이야기보다는 일 이야기가 그에게는 편한 것 같았다.

함께 일했던 공무원들도 이 장관을 “강건하고 꼼꼼한 스타일”이라고 표현한다. “일밖에 모른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지난해 6월 일주일에 걸쳐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와 독일 고용노동현황을 둘러보는 유럽 출장길에 몇몇 기자들이 이 장관과 동행했다. 그때도 그는 하루 일정이 늦게 끝나면 새벽 1시까지도 그날 했던 일과 결과를 보고받고 논의했다. 같이 출장을 온 사람들끼리 술 한잔 하면서 회포를 풀 만도 하건만. 출장 내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서 기자들도 혀를 내둘렀다.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도 ‘깐깐한 장관, 맞서는 장관’으로 유명하다.

“국회에서는 왜 그렇게 뻣뻣하신지요. 사람들이 다들 궁금해해서”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진실된 장관이고 싶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구렁이 담 넘듯 '예, 예'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질문에 대해 성실하게 답을 하는 게 행정부의 자세 아니냐”는 설명이었다. “그게 책임 있는(지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몇몇 국회 환노위원들도 사석에서 “장관이 회의장에서는 깐깐하지만 돌아가면 일은 잘하더라”는 평가를 내놓곤 한다. 까칠한 도시남의 묘한 매력이랄까.

“욕도 먹었지만 최근엔 칭찬도 받았어요”

▲ 정기훈 기자
일단 욕먹은 이야기부터 해 보자. 이 장관은 취임 후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복수노조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안착을 이유로 쌍끌이 식 근로감독을 펼쳐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노동시간단축과 불법파견 특별감독을 추진하면서 경영계에서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꼼꼼한 업무 스타일 탓인지 힘들어한 공무원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 장관은 선배 기수들을 제치고 2009년 기획조정실장에 올랐다. 이후 노사정책실장과 차관을 거쳐 2011년 5월 장관이 됐다. 그가 추진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내용의 노동시간단축 정책은 대선 기간 동안 여야 후보의 공통된 공약으로 채택됐다. 관련법안까지 국회에 제출돼 있다.

지금은 어떨까. "노동계나 경영계, 양쪽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한때는 노동계의 공적으로 몰리기도 했죠. 나쁜 놈, 죽일 놈, 타도 대상 1호.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욕먹는 걸 즐기시냐"고 물었다.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쨌든 그도 인간이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저는 당당하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노동계 입장을 너무 두둔한다고 얘기하고, 노동계는 경영계 입장을 너무 고려한다고 합니다. 정부는 노사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바라봐야 합니다. 때로는 노사 어느 한 쪽에서 자기 이해관계와 거리가 있는 정책을 펴면 비판과 혹평을 하기 마련이죠. 가야 할 방향이 맞다면 노사 모두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장관은 평소에 본지 기자들이 "매일노동뉴스를 열면 장관님 욕밖에 없다"고 타박하면, "욕을 먹을 상황이 생기면 욕먹는 것이고,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곤 했다.

이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공무원은 연예인이 아닙니다. 개혁을 추진하면서 비판과 혹평을 받는 것은 오히려 공무원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길게 보고 정책을 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칭찬을 해 주는 노사 관계자들도 있어요.(웃음)"

강직함은 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강직함이 그로 하여금 여러 사람들과 대척점에 서게 만들지만 한편에서는 정책을 일관되게 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노동부는 지난해 제조·금융·식품업종 등에서 200여곳의 사업장을 감독해 불법파견 458건을 적발하고 181건을 사법처리했다. 2천489명을 직접고용하도록 조치했다. 특히 연중 수시로 벌였던 장시간 노동 감독은 사용자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일조했다. 핵심직무역량 평가모델 개발과 중소기업 인력 빼 가기 제재와 같은 그의 아이디어들은 모두 정책으로 만들어졌다.

이 장관은 "아이디어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행정의 특성상 일순간에 모든 것을 완결할 순 없었을 것이다. 이 장관도 "국회에 법안이 발의돼 있긴 하지만 노동시간단축이나 출퇴근재해 산재인정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현대차 불법파견, 이젠 풀어야 … 노사 피장파장”

그는 임기 내내 현대자동차와 악연이었다. 이 장관이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장시간 노동 개선은 물론이고 사내하청·불법파견은 여전히 노동부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다. 노동부는 현대·기아차가 장시간 노동을 개선하지 않자 당시 김억조 현대차 부회장과 이삼웅 기아차 대표이사를 소환조사한 뒤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 뱃심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이 장관이 울산에 내려가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던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장관은 "3천명 신규채용은 미흡하고 더 많은 노동자를 더 빨리 고용하는 한편 근로자의 근무경험(경력)을 인정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현대차에 주문했다.

이 장관은 노동계에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현대차 노사가 논의 중인 3천500명 신규채용안에 '경력인정'만 되면 노사합의로 문제를 풀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대법원 판결이 난 최병승씨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해야죠. 그런데 나머지는 아직 소송 중이고 언제 결론이 날지 모릅니다. 경력인정 신규채용은 내용상 정규직 전환과 마찬가지예요. 일단 사전 해결책으로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되, 소송은 소송대로 진행하면서 결과가 나오면 반영하는 식으로 문제를 푸는 게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최병승씨 고공농성도 문제 삼았다. "최근 유행처럼 고공농성이 번지는데 그것은 개인에게 너무 큰 고통과 부담을 주는 겁니다. (문제를 풀어야 할) 노조가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 장관은 “최병승씨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농성을 시작했다면 현대차가 (법대로) 정규직 발령을 낸 만큼 농성을 풀고 일터로 돌아가는 사리에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농성이 더 필요하다면 최병승씨 외에 다른 사람도 있지 않냐”며 “함께 풀자고 했으면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장관은 노동계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고공농성을 한다고 안 될 게 되고, 농성을 안 한다고 될 게 안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고공농성을 하든 안 하든, 될 건 되고 안 될 건 안 돼야 이치에 맞는 사회 아닐까요."

그래서 "사측에 문제가 많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현대차는 노나 사나 양쪽 다 피장파장"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장관은 "법과 원칙은 노조뿐만 아니라 사용자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최근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는 반드시 도려내야 할 노사관계의 암세포라는 생각으로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건함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먼저 가족 얘기부터 들어보자.

이 장관의 외할머니는 이야기꾼이었다고 했다. 저녁때면 외할머니댁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단다.

"사랑방이랄까요? 사람들을 잘 모으고 조직도 잘하시고. 그런 반면 살림은 잘 못하셨지요."

옛 이야기에 이 장관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도 외가의 영향이라고 했다.

그런데 성격은 외할머니와 달랐다. 직설적이고 강직한 면은 정치꾼보다는 행정가와 닮았다. 이 장관의 아버지가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는 누나를 제외하고 4형제 중 막내였지만 의견을 조율하고 합리적 대안을 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단다. 속된 말로 '끗발은 가장 아래지만 말발은 가장 앞섰다'고 했다. 이 장관의 어릴 적 별명은 ‘작은 용걸’(아버지 성함)이었다.

일례가 있다. 그는 94년 "울산지청장으로 가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홀로 울산에 살고 계신 것을 감안해 울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버지가 반대했다. "오지 마라. 여기 오면 친인척에 선후배에 밟히는 게 아는 사람인데,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였다.

이 장관은 결국 울산 옆 양산지청장을 택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 몰라도 그가 양산지청장을 맡던 시절에 큰 사건이 터졌다. 당시 양산의 한 전자업체에서 여성노동자 20명이 집단적으로 무월경증(난소기능 저하증)으로 불리는 생식기 장애 직업병이 발생한 것이다. ‘2-브로모프로펜’이라는 화학물질이 원인이었다.

역학조사 결과 해당 물질은 남성의 정자생성 기능까지 약화시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그 공장에서 일하던 33명의 노동자 중 남성 8명을 포함해 28명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해성을 입증해 유해물질로 등록했다. 말 그대로 세계 최초였다. 그는 이 성과로 나중에 산업보건과장을 했다.

“정치요? 안 하렵니다”

"정치를 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19대 총선 때도 비례대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박운 편집국장)

"어머니가 예전부터 표 받는 일은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이채필 장관)

"울산시장 출마 이야기도 있던데요"라고 되물었다.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현직 장관으로서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퇴직 이후 일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노조간부는 한번 해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상급단체보다는 단위노조에서 일하면서 비정규직 등 노조가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간부가 된다면 정부에만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운동을 펼치고 싶다”고도 했다. 실제 노조간부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아마도 그런 노동운동을 펼쳐 달라고 노동계에 전하는 메시지 같았다.

이 장관은 "매일노동뉴스도 상급단체보다는 다양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 주는 폭넓은 매체가 됐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노사’보다는 ‘국민’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은 물론 노사가 국민을 바라보고 활동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는 설명이라고 노동부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이 장관의 뚝심은 많은 혹평을 듣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의 뚝심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여럿 생겼다고 한다. 상층단위 노사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최저임금·근로기준과 같은 개별노동자 보호와 한국형 실업부조(취업성공패키지) 도입 등 고용정책에서 사회적 약자를 고려하는 정책을 펼쳤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이 장관이 어떤 행보를 이어 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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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1956년 4월 울산 출생
1981년 영남대 법정대 행정학과
1987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과
2011년 한국기술교육대학원 인력개발학 명예박사

1981년 행정고시(제25회)
1982~1992년 노동부 사무관
1992~2004년 청와대 행정관·양산지청장·산업보건과장·총무과장 등
2004~2009년 고용정책관·노사정책국장 등
2009~2010년 기획조정실장·노사정책실장
2010~2011년 고용노동부 차관
2011년~현재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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