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의해 갇혀 있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옥쇄투쟁을 하고 있는 셈이죠. 31일 오후부터 경찰이 모든 물품의 공장 반입을 막았습니다. 비도 많이 오는데 먹을 것 외에는 물품공급이 중단돼 걱정입니다."
 

1일로 3일째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 최강서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조직차장의 시신을 지키고 있는 금속노조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한진중이 공장 안에 있는 사람 전원을 건조물 침입죄로 고소했다"며 "아침부터 공장 안에 있는 60여명이 핸드폰으로 영도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라는 황당한 통보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시신과 함께 고립된 영도조선소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경찰이 운구행렬을 막아선 채 고인의 아버지에게 최루액을 분사하고 머리채를 쥐어뜯었어요. 그때 마침 서문 옆에 행렬이 있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문을 잡고 흔드니까 사람이 드나드는 쪽문이 열리더군요. 그래서 운구가 공장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경찰의 과잉진압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요."

지난 31일 오후 민주노총 영남지역 노동자 800여명이 한진중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사회자는 고 최강서 조직차장의 시신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경과를 설명했다. 경찰에 둘러싸인 영도조선소는 고립무원의 섬이 돼 버렸다.

정기훈 기자

이날 문화제가 열린 무대의 바로 뒤편에는 흰 천막으로 고인의 영정이 모셔진 분향소가 설치돼 있었다. 분향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진중 영도조선소 정문이었다. 고 최강서 조직차장이 노조사무실에서 목매 숨진 지난해 12월21일 회사가 처음으로 한 조치는 용접으로 정문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그때 막힌 정문은 '문'의 기능을 잃고 고인의 천막 분향소로 쓰이고 있다.

정문 양쪽에는 5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그 앞으로 13개 중대 900여명의 경찰병력이 빼곡하게 에워싸고 있다. 경찰은 31일 오후 5시께부터 담장 주변에 접근하는 것마저 차단했다. 그리고 공장 안에 갇힌 노동자들에게 전달할 생필품과 시신훼손을 막을 드라이아이스 반입까지 막아 버렸다.

이에 대해 부산지방경찰청 홍보팀 관계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이라며 "물품 반입을 막는 것은 한진중공업"이라고 책임을 사측에 떠넘겼다.

정운용  부산경남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경찰에 맞아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의문사로 희생된 이의 부검에도 참여해 봤지만 시신을 방치하는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원수도 죽으면 장례를 치러주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진중 정문 앞 시신안치는 유가족들의 뜻"

"원래는 저 냉동탑차에 시신을 안치할 예정이었는데…."
유장현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선전부장이 정문 앞에 있는 화물차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41일간 차디찬 냉동고에 누워 있던 고인의 시신을 들고 영도조선소로 향한 것은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 달 보름이 넘도록 한진중이 한 번도 협상에 응하지 않자 유가족들이 회의를 열어 운구를 들고 한진중 정문으로 가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인의 부인 이선화씨는 "하루라도 빨리 장례를 치르고 싶은 마음에 지회 간부들을 불러 '힘들지만 우리 남편 주검과 함께 한진중 정문 앞으로 가자'고 했다"며 "남편이 자기 집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작업장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어려울 줄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2003년 1월 창원 두산중공업에서 분신한 배달호씨도 65일간 냉동탑차 안에 안치됐다. 당시 두산중은 시신에 대한 퇴거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10년 전 김주익 지회장도 드라이아이스로 시신보존

"대화하자"는 유가족들의 절규에도 한진중은 “시신을 볼모로 투쟁을 벌이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며 “영도조선소에서 시신이 나와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시신을 볼모로 투쟁한다"는 회사측의 주장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2003년 10월17일 김주익 전 한진중지회장이 129일 동안 농성을 벌이던 85호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나의 주검의 형태가 어떠하든 나의 죽음이 있을 곳은 85호기 크레인"이라며 "이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나의 무덤은 크레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죽어서라도 투쟁의 광장을 지킬 것이며, 조합원의 승리를 지킬 것"이라고 남겼다.

고인의 뜻에 따라 금속노조는 "한진중이 손배가압류를 철회할 때까지 시신을 크레인 위에서  옮길 수 없다"며 김 지회장의 관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 시신 부패를 막고 한 달간 투쟁을 벌였다.  당시에도 한진중은 "시신을 볼모로 극단적인 투쟁을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7억4천만원(노조 대상)이었던 손해배상·가압류 액수가 158억원으로 스무 배 이상 불어났고, 김 전 지회장의 죽음을 함께 가슴 아파했던 노동자들이 둘로 갈라졌다는 점이다. 한진중 기업노조는 31일 "극소수 강경 조합원과 외부 단체들이 무단으로 난입해 시신을 볼모로 극단투쟁을 전개함에 따라 우리 일터가 또다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2일 한진중으로" 민주노총 부산서 대규모 규탄대회

민주노총은 31일 오후 부산에서 중앙집행위원회의를 열고 '최강서 열사 투쟁계획'을 확정했다. 민주노총은 2일 한진중 정문 앞에서 전국 집중 규탄대회를 개최한다. 이어 매일 한진중 앞에서 지역본부 순환농성을 전개한다. 아울러 정치권 진상조사단 구성을 추진하고 조합원 1인당 100원의 투쟁기금 모금하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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