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정 변호사
(법무법인 열린법률)

1. 머리글
대법원 판례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6다30730호)에 따르면 해고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판단돼 법원이 해고무효 판결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곧바로 해고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근로자가 해고기간 동안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해고무효 사실만 가지고 정신적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없다. 다만 근로자가 해고를 당할만한 사유가 전혀 없는데도 사용자가 오로지 근로자를 직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고의로 명목상의 해고사유를 내세워 해고를 한 경우는 별개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 경우는 근로자가 해고기간동안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2. 사안의 개요
가. 1960년생 여성인 원고는 1981년 6월부터 2001년 7월까지 만 20년 동안 114 안내 및 교환 업무를 하다가 매가패스 상품판매 및 창구업무를 거쳐 2006년 3월2일부터는 청주지사 고객서비스팀에서 일반전화 및 메가패스 현장 개통업무를 담당했다.

원고는 현장 개통업무를 담당하는 동안 직무태만, 조직 내 질서존중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2008년 10월31일 파면됐다가 충북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뒤 재심사건에서도 승소해 피고회사에 복직했다.

나. 원고는 자신이 징계해고를 당할만한 귀책사유가 전혀 없음에도 피고가 자신을 해고한 것은 자신을 강제퇴출 대상자로 정해 놓고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이라는 행동지침서에 의거해 고의로 명목상 해고사유를 만들어 해고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는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피고는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피고는 원고를 해고한 것은 취업규칙상 징계사유가 있어 해고한 것일 뿐이며 피고가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가 원고를 해고한 것은 피고 본사가 원고를 퇴출대상자로 정해 놓고 피고 본사가 만든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을 통해 고의로 명목상 해고사유를 만들어 해고한 것으로 봤다. 따라서 불법행위를 구성하며 원고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3. 판결의 의미
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등 한국의 모든 기업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인력감축을 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처음에는 명예퇴직 수당을 통해 자발적 퇴직(희망퇴직)을 유도한다. 하지만 기업이 설정한 인력감축 목표에 미달될 경우는 구조조정 대상자, 즉 퇴출대상자를 선정한 뒤(아예 처음부터 퇴출대상자를 미리 선정해 두는 기업도 많다고 함) 상사들이 대상자를 불러 퇴직을 권고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이때 대기업에서는 보통 먼저 대상자에 대한 정보, 즉 고과와 업무실적·가정환경·경제상황, 나아가 개인적 약점까지 모두 수집하도록 한다. 그 정보를 가지고 면담을 하되 면담요령에 대해 매뉴얼을 만들어 중간간부들을 교육시킨 후 면담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화 돼있다.

이렇게 면담을 통한 사직을 권유했는데도 퇴사를 하지 않는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근무부서나 근무지역을 바꾸게 하는 방법 등으로 불이익을 주면서 퇴사를 종용한다. 한편으로는 징계사유를 수집하거나 고의로 징계사유를 만들어 협박조로 퇴사를 종용하다가 최후의 방법으로는 징계해고를 통해 퇴출을 시도하게 된다. 그런데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매우 높다보니 보통 대기업에서는 법적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한다. 또는 법적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통일된 기준을 적시한 비밀문건을 만들어 통상의 결제라인이 아닌 점조직 형태의 비선을 통해 하달·시행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퇴출대상자를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에게 퇴출 성공여부에 따라 인사 고과상 이익 내지 불이익을 줌으로써 목표달성을 담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 이렇게 은밀하고 교묘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자행되는 불법적인 퇴출프로그램이 우리나라 기업에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음에도 이것을 문제삼아 그 퇴출프로그램의 불법성을 인정한 선례가 없다. 그로 인한 해고에 따른 위자료를 인정한 선례도 없었다.

다. 그런데 이번에 최초로 법원이 케이티가 본사 차원에서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 이라는 퇴출프로그램을 만들어 그 프로그램에 따라 근로자를 해고한 것은 명백히 불법행위가 되며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케이티라는 한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고발을 넘어 한국에서 만연돼 있는 기업의 불법적인 근로자 퇴출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일이 될 것이다. 동시에 퇴출프로그램의 불법성을 공론화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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