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 버린 6년 된 낡은 공장.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발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공장 안을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지회장이 성큼성큼 걸어다니며 방문자들을 이끌었다.

"여기가 기타모양으로 나무를 성형하고 뻬빠치는(사포질하는) 공정이었어요. 분진이 엄청났죠."

15일 오후 인천 부평 콜트악기 공장을 찾은 민주노동당 노동대책위원회 의원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방 지회장은 마치 조립 중인 기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설명했다. 한 층을 올라가니 주인 잃은 빈 공장에 회색 작업복이 걸려 있다. 예술작품이다. 문화예술인들이 빈 공간을 점거한 후 예술공간으로 바꿔 버리는 예술운동인 스콰트(Squat) 활동을 이곳에서 벌인 덕에 흉가 같던 공장에 온기가 돈다.

현수막들로 지붕을 만들고 비닐로 바람만 간신히 막은 회의장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김성주·한정애·전순옥·홍영표·김기준·은수미·윤민석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마주 앉았다.

"텅 빈 공장을 찾아줘서 고맙습니다. 요즘 들어 박탈감과 상실감이 더 커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정리해고자라는 꼬리표가 사회적으로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낙인이 우리를 죄어 왔을 거예요." 방 지회장이 먼저 인사를 했다.

"민주통합당 노동대책위는 대선이 끝난 후 어려운 노동현장을 순회하고 있어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영호 사장을 증인으로 불러 봤지만 성과가 없었지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홍영표 의원이 답했다. 의원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방 지회장의 대답은 소박했다.

"이 건물에 있는 노조사무실에 단전·단수를 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쟁점이 걸려 있는 재판이 곧 열립니다. 석면 문제로 건물 철거는 유보됐는데, 법원의 대체집행 결정으로 식당건물과 노조 천막농성장이 언제든지 철거할 수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성명서라도 법원에 전달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콜트악기가 2006년 고용유지지원금 6억원을 받고 2007년 정리해고를 단행했어요. 고용을 유지한다면서 돈을 받고 해고한 겁니다. 전부 토해 내게 해 주세요."

노동자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관심을 갖고 지지와 연대를 보내 달라는 것이다.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악기지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위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는 사례가 우리뿐만 아니라 한진중공업을 비롯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무분별한 생산시설 해외이전을 규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콜트악기에서 차를 타고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일자동차판매(옛 대우자동차판매) 본사에 도착했다. "우리의 소원은 복직"이라고 쓰인 흰 현수막이 눈 쌓인 나무 위에 크리스마스트리처럼 걸려 있다.

대우자동차판매는 한때 대우차를 팔아 얻는 수수료를 수익기반으로, 1조원이 넘는 자산을 가진 잘나가는 회사였다. 그런데 경영진이 차를 팔아 얻는 수익을 건설업에 쏟아붓고, 지급보증을 잘못 서면서 회사가 휘청이자 한국지엠에 지불해야 할 차량 판매대금까지 끌어쓰면서 문제가 됐다. 문어발식 사업 확장으로 경영난을 겪던 대우자동차판매는 지난 2010년 한국지엠 자동차 공급계약이 중단되고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차량판매부문을 영안모자에 매각했다. 영안모자는 250억원을 투자해 전국 12개 정비사업소와 우리렌터카·수입차 법인 등 계열사와 자산을 인수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영안모자에 매각되기 전에 대우자판에서 해고됐다.

이곳은 정리해고 후 고용이 승계되지 못한 노동자 180여명의 마지막 보루다. 대우자동차판매를 인수하고 자일자동차판매로 사명을 바꾼 영안모자와 금속노조 대우자동판매지회(지회장 김진필)는 지난해 9월부터 7차례 만나 고용문제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 영안모자는 브랜드에 상관없이 자동차를 판매하는 일종의 자동차업계의 하이마트 같은 '오토마트'를 전국에 세워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도 지회 조합원에 대한 고용승계에 대해서는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진필 지회장은 "처음에 고용승계 가능인원이 20명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60명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는데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사실상 교섭이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매일 출근해 빈 사무실을 쓸고 닦는다"며 "언젠가는 돌아올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벌써 월급 한 푼 못 받은 게 4년째"라고 고개를 떨궜다. 그는 "영안모자측이 일부를 고용승계 하더라도 올 연말에나 근무할 수 있다고 한다"며 "1년을 막연한 희망으로 더 버텨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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