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새해가 시작된 지 꼭 열흘이 지났다. 얼마 전만 해도 새해가 되면 설레곤 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일도 있지만 더 크게 움츠리게 된 것은 노동현장의 암담함 때문이다. 연말부터 이어진 스스로 세상을 버린 노동자들의 뉴스에 놀랐고, 법원이 울산 송전탑 위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집행에 나섰다는 보도에 한 번 더 놀랐다. 법원이 갑작스레 강제집행에 나서고 노동자들이 예상치 못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왜일까.

사람들은 당연한 것으로 믿었던 것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좌절하기 마련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불법파견 사건들이 그렇다. 이미 위장 하도급은 불법파견이므로 사용자는 하청회사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두 차례나 내려졌다. 판결의 취지가 소송을 한 당사자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알 만하다. 그럼에도 개별 사건이므로 해당 당사자에 한해 정규직 전환 인사조치를 했다. 동시에 한쪽으론 신규직원을 모집하고 있다. 행정관청은 그래 왔던 것처럼 수수방관이다. 노동자들의 배신감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법대로 했을 뿐이다, 우연이다”라는 답은 궁색하다. 법원은 원칙대로 집행을 했을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노동자들은 다르다. “법원조차 우리를 버리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30년 만에 닥쳤다는 혹한에 그들은 철탑 위 좁은 자리에서 침낭에 의지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살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법원의 집행은 그 후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직까진 이 같은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새로운’ 정부가 전혀 새롭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다수의 언론에서도 지적하듯 새로운 정부에서도 노동과 노동자는 정책집행의 중심에 서기 어려울 듯 보인다.

복지와 노동에 관한 새 정부의 관계 설정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생각건대 복지와 노동의 선후를 따지자면 논리적으로도 당연히 노동이 먼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복지예산에 관한 논쟁도 그렇다. 늘어난 복지예산을 위해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겠다. 세입을 늘이겠다”는 등 복지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어떤가. 복지의 대상은 노동자이고 무엇보다 복지를 위한 예산, 즉 세금을 납부하는 주체는 바로 노동자 아닌가. 그렇다면 국가는 노동자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누구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증세해, 누구에게 집행하겠다”는 이 모든 과정을 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노동자가 복지정책 입안에 중심에 서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노동자는 없다.

대학 시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이라는 책을 접한 적이 있다. 공감했지만 과거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같은 일을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두어 세대가 지났건만 더 심각한 이야기의 ‘난쏘공’이 나오고 있다.

즐거운 상상을 해 봤다. 만약 당선인이 철탑 위에서, 천막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기를 바라는 노동자들을 찾았으면 어땠을까. 아니, 간단한 성명만이라도 발표했더라면 어땠을까.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국가에 소중한 구성원에 대한 보호책무를 다하겠다는 의지의 밝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랬다면 아마 법원도 굳이 사법권을 발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왜, 철탑으로, 크레인으로 노동자들이 올라가는지 물어봐야 할 때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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