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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희망버스 '재시동' … "우리가 희망이다"현대차 송전탑 거쳐 한진중공업으로 '희망' 전해
▲ "사랑합니다". 현대차 울산공장 집회에 참가한 모녀가 송잔탑 위에 오른 천의봉·최병승씨에게 하트를 그리고 있다.

희망버스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첫 버스가 출발한 지 정확히 2년, 마지막 버스로부터 1년3개월 만이다. 모두들 다시는 버스 탈 일 없기를 바랐지만 결국 또다시 버스에 올랐다.

대다수 탑승객들은 2년 전 살기 위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미터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살아서 내려오게 만들었던 ‘그들’이었다. 혹은, 당시 함께하지 못해 마음의 짐을 쌓아 놓고 있던 학생들과 시민들이었다.

목적지는 울산과 부산. 비정규직 철폐와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건 노동자가 숨을 쉬거나, 목숨을 버린 노동자가 잠든 곳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최병승씨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사무장으로 일하는 천의봉씨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앞 45미터 송전탑에 올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으로 일했던 고 최강서씨는 지난달 21일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과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액 등을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비없세) 등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한 ‘다시 희망만들기’ 깃발 아래 사람들이 모였다. 그렇게 6번째 희망버스가 지난 5일 오전 서울을 비롯해 충청·강원·경남에서 일제히 시동을 걸었다.

▲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모인 3천명의 군중들은 한진중공업 앞에 모여 "최강서를 살려 내라"고 외쳤다.


저마다 희망을 싣고

이날 오전 서울 출발지인 서울시청 앞 대한문 앞은 이른 시간부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연일 계속되는 한파 탓에 대부분 털모자 등으로 중무장을 했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참가자들은 노조·인권단체 활동가로 구성된 진행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버스에 올랐다. 오전 10시께 서울에서만 13대의 버스가 울산으로 출발했다.

기자가 탄 10호 차량은 영화감독·가수·소설가와 '함께살자 농성촌' 관계자, 강정지킴이, 용산참사 유족, 쌍용차 해고자 등 다양한 직업과 사연을 지닌 참가자로 가득했다. 강정지킴이 이욱씨는 “처음으로 타 본 희망버스여서 뿌듯하지만 희망버스가 없는 세상이 제일 좋은 세상일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하다”며 “끝까지 함께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오겠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자 최규민씨는 "재작년 희망버스에 참가해 사회적 힘으로 정리해고의 본질을 알리고 한진중공업 동지들을 공장으로 돌려보낸 것에 일조한 것 같아 좋았다"며 "그럼에도 회사는 언제든지 합의를 번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다시 한 번 희망버스로 힘을 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희망버스의 종착지인 부산 한진중공업 앞 주차장 벽면에는 고 최강서씨를 추억하고 회사를 규탄하는 글귀가 가득했다.


"무간지옥이지만 희망 잃지 말자"

참가자들은 고공농성자들에게 전할 손편지를 쓰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당초 예정시간보다 30분 늦은 오후 4시께 희망버스는 명촌대교를 건너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진입했다. 버스가 공장 앞 진입로를 지날 때 오른쪽으로 붉고 검은 투쟁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달린 삼각뿔 모양의 송전탑이 치솟아 있었다.

그 아래 마련된 단성 앞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빼곡히 앉아 집회를 열고 있었다. 천의봉·최병승씨는 낙하 방지를 위해 가로로 내건 철제구조물에 나란히 기대어 집회를 지켜봤다. 그들이 팔을 기댄 곳 아래로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노동자들은 하늘의 딸과 아들입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윗대가리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자기 목숨을 내맡기고 투쟁할 때 여러분은 승리할 수 있을 거예요.”

여성노동운동 대모로 불리는 조화순 목사가 연설을 마쳤다. 조계종 노동위원회 위원장 종호스님은 “최병승·천의봉이 살아 있는 부처”라며 “불이 나면 꺼질 일만 남는다. 자본의 실패를 노동자가 책임지는 가혹한 사슬을 끊어 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가 막바지에 이르자 참가자들의 환호성이 유난히 커졌다. 마이크가 송전탑에 올랐고, 천의봉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씨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일기를 들려줬다.

“(2012년) 11월3일 농성 19일차, 비는 천막을 두드리고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정치인들이 방문해서 새로운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있는 법도 안 지키는 게 자본가 아닌가. 참 답답하다. 지금 법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비도 오고 빗속의 여인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최병승씨는 “송전탑에 오른 81일 동안 세상은 더욱 병들어 갔고 무간지옥이 돼 버렸지만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라며 “10년을 싸운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해 달라”고 당부했다.

▲ "꼭 이기겠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의 함성에 손짓으로 답하는 천의봉·최병승씨.


"자본의 요구에 질식당하지 않는다"

어스름이 질 오후 6시께 희망버스는 종착지인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했다. 철탑 위에 두 노동자를 남겨 놓고 떠나는 탓인지 차안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부산이 가까워지자 버스 안 모니터에 고 최강서씨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사진 속 그는 볼링장·졸업식·집회현장에서 늘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동영상 속의 그는 마이크를 잡고 사투리를 섞어 “술 한잔 먹어서 기분 좋습니다. 저는 큰 욕심은 없고요. 좋은 형님들과 어서 빨리 회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형의 죽음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인의 동생이 화면에 등장했다. 그는 “꼭 이겨서 더러운 세상 깨끗하게 바꿔 달라. 형의 죽음을 그냥 묻히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버스 안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한진중 영도조선소에 도착했다. 회사 앞 대형 주차장에는 고 최강서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십 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파괴 긴급대응 비상시국회의'가 집회시작과 함께 선언문을 낭독했다.

비상시국회의는 “자본과 정부는 살아 남으려면 남을 짓밟고 올라서라고 요구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요구에 질식당하지 않고 함께할 것”이라며 “철탑 위의 노동자들과 한진중 노동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스는 떠났지만 계속되는 손짓

참가자들은 “사람 죽인 악질자본 조남호를 구속하라”, “열사의 소원이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어 흥분과 활기가 가득하던 집회장이 한순간 엄숙해졌다. 무대에 오른 고 최강서씨의 부인 이선화씨가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우리 아빠의 죽음을 위로하고 회사에 약속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 주신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남편이 정리해고 후 재취업하는 데 2년이 걸렸는데, 회사에 복귀한 지 3시간 만에 무기한 강제휴업을 당해 다시 회사를 나가야 했습니다. 회사는 남편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허위 신문광고까지 냈습니다. 남편의 마지막 소원인 민주노조로 돌아와 주세요. 남편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

집회 마지막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대에 올랐다. 김 지도위원은 “우리가 살아서 복직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날이 오면 강서도 우리들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 일정이 마무리되고 참가자들은 회사 정문 오른쪽에 설치된 고인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은 조문을 마친 사람들에게 희망천을 나눠 줬다. 참가자들은 조선소로 향하는 철문에 희망천을 걸고 페인트를 묻힌 손자국을 남겼다.

자정이 지나 희망버스는 서울로 출발했다. 떠나는 참가자들과 남겨진 조합원들의 손짓은 서로가 멀어지도록 멈추지 않았다.

양우람  against@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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